청와대가 인사 문제로 사면초가에 놓인 분위기다. 박근혜정부 출범 당시 주로 인사 검증시스템 부실에 따른 잡음이었던데 반해, 최근 인사 파동은 청와대와의 갈등에 기인해 위기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우선 '기초연금 축소' 문제로 사의를 표명한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에 대해 청와대는 "입장이 없다"고 했지만 그 침묵에 불쾌감이 역력히 묻어난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 후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몸소 두 차례나 고개를 숙였고, 정부도 정홍원 총리의 입을 빌려 세 차례나 사퇴를 만류했음에도 진 장관이 고집을 꺾지 않아 공직기강의 심각한 부재상황을 노출시킨 탓이다. 정 총리는 28일 보도자료를 통해 "지금 와서 소신이 다르다는 말을 하는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진 장관의 독불장군식 행보에 불만을 드러냈다.
정 총리는 앞서 27일 진 장관의 사표를 반려했고, 25일에는 해외 출장을 마치고 귀국한 그를 직접 만나 "(사퇴 의사는) 없던 일로 하겠다"며 간곡히 설득했다.
진 장관을 향한 청와대의 불만은 단순한 거취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당장 국정감사를 앞둔 시점에서 복지공약 후퇴 논란을 수습하고, 야권의 공세에 대응해야 할 주무부처의 구심점이 사라졌다는 현실적 이유도 있다. 진 장관은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으로서 입안 단계에서부터 완성 때까지 새 정부의 공약을 주도한 핵심 브레인이다. 새누리당 내에서는 "납득할 수 없다"(윤상현 원내 부대표)는 정도로 표현하고 있지만 부글부글 끊는 모습이다. 한 여당 관계자는 "대통령까지 나서 사태 수습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데, 정책을 진두지휘한 사람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무작정 잠적을 하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이냐"고 비판했다.
더 큰 문제는 진 장관 사퇴의 후폭풍이 박 대통령의 리더십에 큰 타격을 주고 있는 점이다. 진 장관은 29일 기자들과 만나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연계하는데 반대했고, 지금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해 청와대의 갈등설을 사실상 시인했다. 청와대는 이날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진 장관의 '항명'으로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도 커다란 구멍이 뚫린 셈이 됐다.
정부 최고위층 인사의 진퇴를 둘러싼 파문이 잇따르고 있는 것은 우려할만한 대목이다. 이미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퇴진 논란, 지난달 양건 전 감사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 때부터 박 대통령의 리더십에 이상 기류가 감지돼 왔다. 낙마 원인도 매번 청와대의 갈등으로 인한 자진 하차 성격이 강하고 파열음도 컸다.
그렇다고 이러한 인사 난맥상을 조기 수습할 해결책도 마땅치 않은 상황. 검찰총장만 해도 청와대는 28일 우여곡절 끝에 채 전 총장의 사표를 수리했지만, 총장후보추천위 구성과 심사, 국회 인사청문위원회 등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차기 총장 인선은 두 달 가까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사퇴 한 달이 넘도록 공석 중인 감사원장도 후보군에 대한 하마평만 무성할 뿐, 뚜렷한 소식이 들리지 않아 업무 공백사태가 길어지고 있다.
또 정권 초부터 불협화음과 미흡한 업무능력을 여러 차례 노출한 경제라인의 일부 각료도 여권 내부에서조차 교체설을 주장하고 있어 중폭 이상의 개각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오지만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 전문성과 도덕성을 겸비한 적정인사를 찾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줄줄이 낙마 사태를 겪었던 인사청문회 참화 상황을 감안하면 함부로 내각 인사를 추진하기도 어렵다. 여권 핵심관계자는 "대통령의 신임에만 기댄 인사로는 무너진 국정운영의 동력을 회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철저히 전문성과 업무 성과에 기반한 인적 쇄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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