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9월에도 여의도 광장에 내리쬐던 햇볕은 뜨거웠다. 30분만 열병분열 연습을 하고 나면 교련복이 땀에 젖어 팔다리에 감겼다. 땡볕 아래 지루하게 반복되는 제식훈련이 열아홉 청춘에 달가울 리 없었다. 그러나 고3의 눈앞에 닥친 대학입시의 중압감에도 불구하고, 당장은 오후 수업에서 해방된 기쁨이 작지 않았다. 그 때문에 지원자가 너무 많이 몰려서 체격 등을 기준으로 선발 절차까지 거쳤으니, 철부지들로서는 일종의 선민의식까지 느낄 만했다.
▲ 더욱 청춘의 가슴을 뛰게 한 것은 여학생들이었다. 당시에도 남녀 고교생들의 그룹미팅 기회는 있었다. 그러나 '문학의 밤' 등 공식행사와 관련된 미팅을 제외한 남녀 만남은 대개 날라리가 주역이었다. 여의도 훈련에 참가해 매일 몇 시간씩 얼굴을 마주한 여학생들은 달랐다. 나름대로 학교를 대표하는 여학생들이어서 우선 외모가 깔끔했고 잠시 더듬은 내면도 알찼다. 지금까지 그 여학생들과 인연이 이어진 친구들이 있을 정도니 그때야 오죽했으랴.
▲ 몸은 괴로워도 마음은 기뻤던 것은 고등학생들만이 아니었다. 나중에 군대 가서 보니, 국군의 날 행사 참가는 병사들의 희망사항이기도 했다. 이유도 거의 같았다. 이를 악물고 몸으로 때우기만 하면 마음까지 고달픈 내무생활에서 벗어나, 민간인과의 접촉면을 넓힐 수 있었다. 한 달 가까이 흘린 땀에 비해 국군의 날 여의도 기념행사는 얼떨결에 끝났다. 워낙 긴장해서 열병 분열에 임한 때문인지, 단상의 박정희 대통령 얼굴을 보았는지조차 기억에 없다.
▲ 내일 창군 65주년 국군의 날 행사가 모처럼 대대적으로 치러진다는 소식에 불현듯 흐린 기억의 창을 닦았다. 세월이 흐르는 사이, 철부지 시절의 단순한 생각 대신 복잡한 논리가 춤추는 뇌 구조가 굳어진 지 오래다. 그래도 광화문과 남대문 사이에서 기념 군사행진이 벌어진다는 소식은 반갑다. '군사독재 정당화를 위한 상징 강화'라거나 '후진적 군사문화 확산' 따위의 비판은 날로 귀에 설다. 그저 불꽃놀이처럼 국민의 눈이 즐거울 수 있다면 충분하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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