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비린내가 진동하지 않는다. 대놓고 유령이 스크린을 떠돌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극장에선 비명이 넘쳐난다. 관객들은 손으로 눈을 가리기 일쑤고 극장 문을 나선 뒤에도 오랫동안 뒷덜미가 서늘해지는 공포감을 느낀다.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운 영화'를 표방한 미국산 공포영화 '컨저링'이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28일까지 140만491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이 극장을 찾아 '디 아더스'(배급사 집계 136만명)를 제치고 역대 국내 개봉 외국영화 중 공포영화 흥행 2위 자리에 올랐다. 휴일 18만명, 평일 6만명 가량의 관객이 찾는 흥행 행보를 감안했을 때 10월 2일쯤이면 왕좌를 차지할 전망이다. 국내 관객이 가장 많이 본 외국 공포영화는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식스센스'(배급사 집계 160만명)이다.
'컨저링'은 한 가족이 100여 년 전 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한 집에 이사한 뒤 겪게 되는 기이한 체험을 다룬다. 미국의 한 초자연현상전문가가 가장 이해불가한 사건이라 규정한 실화를 스크린에 옮겼다. 한 살인마의 엽기적인 연쇄 살인 행각을 그린 '쏘우'(2004)로 데뷔한 제임스 완 감독이 연출했다. 잔인한 장면이 없는데도 미국에서는 R등급(17세 이하면 보호자의 동반 관람 필요)을 받았다.
'컨저링'의 흥행 돌풍은 개봉 전부터 예견됐다. 미국 시장에서 개봉 3일 만에 제작비(2,000만 달러)의 두 배에 달하는 수익(4,185만 달러)을 올렸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론 2억8,597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제작비의 14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10대 관객의 열렬한 호응이 국내 흥행의 이유로 꼽힌다. 영화포털 사이트 맥스무비에 따르면, 이 영화에 대한 10대 관객의 지난 주말 예매비율이 12%이다. 김형호 맥스무비 영화연구소 실장은 "공포영화 예매의 10대 비율이 두 자리 수를 기록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컨저링'에 대한 10대의 열광은 '더 웹툰'과 '숨바꼭질'의 흥행과도 무관치 않다. 국내 한 영화사 대표는 "'숨바꼭질' 등 무서운 내용을 다룬 영화의 특정장면에 10대들이 열광하고 반복 관람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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