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 다섯 남자에 길러진 소년의 핏빛 성장기 담아"이번 영화 선택 아내 문소리 덕"'지구를 지켜라'의 악동기질 웃음기는 줄었지만 여전"밑바닥까지 떨어졌던 10년 표현하고 싶은 것 있어 버텨"
10년 만이다. 만만치 않은 공백이다. 강산이 변할 세월인데 사람들의 마음은 또 어떨까. 제 아무리 “진흙 속에 감춰진 보석” “가장 저평가된 한국영화”라는 관객들의 찬사가 쏟아진 작품으로 데뷔를 했더라도 견뎌내기 쉽지 않을 시간이었을 만하다. 게다가 극장에서 단 7만여명이 본 영화였으니…. 기나긴 쉼표를 찍고 선보이는 그의 후속작은 과연 평단의 기대치를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인가. 데뷔작과 달리 대중의 환호성까지 끌어내릴 수 있을 것인가. 괴작 ‘지구를 지켜라’ 이후 10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10월 9일)의 장준환 감독에게 쏟아질 만한 물음들이다.
“10년 동안 관객이 어찌 달라졌고 저도 또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궁금하다”는 장 감독을 27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조심스러우면서도 장난기 깃든 목소리로 차분하게 질문에 응했다. 엷은 가을 햇살이 떨어지는 얼굴엔 조용한 미소가 번졌다. 신작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 보였다.
‘화이’는 다섯 남자에게 납치됐다 길러진 소년 화이(여진구)의 핏빛 성장기에 기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십 수년간 경찰들을 농락하며 범죄행각을 벌이던 다섯 남자와 화이의 사연이 차가운 웃음과 뜨거운 활극을 직조해낸다. 화이로부터 아빠 또는 아버지라 불리는 다섯 남자와 화이 사이에 오래도록 봉인됐던 비밀이 풀리면서 영화는 밀도높은 서스펜스를 빚어내고 종국엔 파국으로 치닫는다. 배우들의 연기가 빼어나고 이야기의 흡입력이 세다. 해외 리메이크 이야기가 벌써부터 흘러나온다.
장 감독은 “우리 세대의 아버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세대 아버지들은 역동성과 추진력이 성공신화로 이어지던 남성적인 시대를 산 분들”이라고 규정했다. 특히 화이가 유일하게 아버지라 불리는 석태(김윤석)는 자식을 사자처럼 키우려는 권위적인 가장을 상징한다. 그는 석태의 몸을 빌려 “정글 같은 세상에서 자식이 괴물이 되길 바라는 아버지의 뒤틀린 사랑을 그리려 했다”고 설명했다.
장 감독은 ‘지구를 지켜라’에서 때밀이 수건으로 피부에 상처를 낸 뒤 물파스를 발라 외계인을 심문하는 식의 엉뚱한 상상력을 발휘해 영화광들을 매료시켰다. 그는 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인 단편 ‘이매진’에서도 자신을 존 레논의 환생자라고 믿는 한 청년의 비극을 어두운 웃음으로 그렸다. 웃음기는 줄었지만 장 감독의 악동기질이 다분한 화법은 ‘화이’에서도 여전하다. 다섯 아버지 중 하나인 기태(조진웅)가 ‘사랑한다’는 뜻을 지닌 수화를 질펀한 음담에 활용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장 감독은 “관객들이 유쾌하게 웃다가 저런 대사를 해도 되나 싶어 일순간 조용해지는 장면”이라며 웃음을 지었다.
지난 10년 동안 그는 방귀로 악에 맞서는 슈퍼히어로 이야기 ‘파트맨’과 ‘타짜2’ 등을 준비했으나 촬영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털에 집착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단편 ‘털’과 옴니버스영화 ‘카멜리아’를 구성하는 단편 ‘러브 포 세일’을 만들었다. 그는 “밑바닥까지 떨어진 듯한 아주 힘든 시간이 많았다”면서 “내 안에 뭔가 (표현하고 싶은 것이) 계속 꿈틀거려 버틸 수 있었던 듯하다”고 말했다. “‘지구를 지켜라’ 때문에 SF의 느낌이 있거나 외계인이 등장하는 시나리오의 연출 의뢰가 주로 들어왔어요. ‘의외로 평범하다’는 말도 많이 듣고요. 사람들은 제가 팀 버튼처럼 머리를 산발하고 다닐 거라 생각하나 봐요. (오해를 풀고 싶어) 이번 영화는 전통 고전 신화 비극 같은 단어를 떠올리며 작업했어요.”
장 감독의 아내는 배우 문소리다. 그는 “남들처럼 얘 키우는 일 등 일상이 대화의 대부분”이라면서도 “‘화이’를 선택할 때 아내가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다. “시나리오를 방에 뒀는데 아내가 보고선 세차하고 있는 저를 부르더라고요. (문소리 말투를 흉내 내며) ‘여보~ 이거 되게 상업적인데’라고 말해줬어요. 가장 가까운 사람이니 영향을 서로 줄 수 밖에 없죠.”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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