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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의 애고에코/9월 30일] 오만과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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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의 애고에코/9월 30일] 오만과 편견

입력
2013.09.29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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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잡지에서 읽었던 짧은 얘기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미합중국 육군의 군의관이자 흉부외과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존슨 대령은 운전 중 급한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아들이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 응급실에 있으니 급히 오라는. 병원으로 달려온 존슨 대령에게 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다행히 아드님의 경우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이 아버지는 중태입니다.' 이 얘기가 이상하게 들리는가?

지난 주말에는 발레를 배우는 아이를 기다리느라 학원 안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10대 여학생들로 북적거리는 그 곳에서 뚱뚱하고 수염을 더부룩하게 기른 중년의 남성 한 명이 발레 교습실 안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낡은 청바지와 색 바랜 티셔츠 그리고 오래된 뿔테 안경, 뭔가 발레학원과는 어울리지 않는 외모 때문에 나는 수상한 눈으로 그를 살펴봤다. 이 방 저 방을 들락거리는 그를 보고, 설마 벌건 대낮에 이상한 변태는 아닐 테고, 막힌 하수관이라도 뚫으러 온 배관공이 아닐까 상상도 해 보았다. 아뿔싸, 나중에 아이에게 들어보니 그는 발레 교습 중에 옆에서 피아노를 쳐주는 피아니스트였다. 내가 밖에서 듣고 있던 그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던 사람이 바로 그였다. 편견을 가진 자는 다른 이의 편견에 의해서 피해를 입기 마련이다. 몇 년 전 한 여자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을 때,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가 사회적 차이를 부른다는 내용의 책을 번역하며, 책 말미에 생물학적 차이뿐 아니라 사회적 압력도 중요하다는 내 나름의 해제를 달았다. 이 책의 출판사는 얼마 후 열혈 독자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좋은 책을 '골수 페미' 여교수가 망쳐 놓았다고. '여자대학', '강호정', 이 두 단어만으로도 그의 편견을 불붙이기 충분했던 것이다.

인간의 세상은 편견의 천지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약과고 피부색, 출생 국가나 지역, 종교, 정치적 신념 등이 다르다는 이유로 오해하고, 미워하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학살도 서슴지 않는다.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인 나치의 유대인 학살뿐 아니라, 우리나라 일부 인터넷 사이트를 도배하고 있는 지역감정과 악플 또한 그 잔인함과 부도덕함에서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편견을 단순히 교육과 도덕성 부재로 인한 사회적 현상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가 않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편견은 인간 이외의 다양한 동물에게서도 관찰되며, 이는 진화 과정에서 생성된 본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원숭이들의 경우에도 자기 집단에 오래 함께한 내부자와 최근에 합류한 외부자를 구분할 뿐 아니라, 전자를 긍정적인 일 후자를 부정적인 일과 연관 짓는 감정을 갖는다.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과 그렇지 않은 정당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뇌에서 활성화 되는 부분이 다르다는 연구 결과 또한 편견의 생물학적 기원에 대한 좋은 예 중 하나다.

그러나 편견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생물학적 욕구를 억제하기 위해 사회적 제약들이 존재하듯, 편견도 법, 도덕, 교육, 제도로써 제어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짧은 해외 생활 경험을 더듬어 보면, 편견이 강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사는 지역을 벗어나 본 적이 없거나, 고등 교육에 노출된 경험이 적고, 경제적 혹은 사회적 지위가 낮아 불만이 많은 사람들이다. 지금은 사람의 이동도 훨씬 쉬워졌고, 고등 교육은 일반화되었으며, 인터넷을 비롯하여 새로운 정보에 노출될 기회가 더 강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편견을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려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형태로든 제재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인터넷 매체를 통해 자신의 편견을 일반화시키려는 사람들이나, 그 편견을 이용 하려는 정치인들 말이다. '인권'이라는 말을 하면 종북이라 색칠하고, 그 앞에 '북한'이라는 단어만 붙이면 갑자기 보수 꼴통이 되는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다시 첫 얘기로 돌아가자. 존슨 대령은 그 아이의 엄마였다.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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