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멍하니 길을 걷다가 쇼윈도에 비친 내 옆모습을 보게 되었다. 어깨와 등이 구부정해서 깜짝 놀랐다. 거울 앞에 일부러 설 때는 자세도 표정도 미리 가다듬은 후라 내가 평소 어떤 모습으로 지내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런데 이렇게 불시에 맞닥뜨리게 되니, 자세에 각인된 나이가 실감으로 다가왔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중력이라는 비가시적인 힘이 직립 보행하는 나의 신체를 통해 점차 또렷한 형태를 드러내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씁쓸한 생각과 함께.
이후로는 서있거나 걸음을 옮길 때 좀 신경을 쓰게 된다. 보통은 자세 따위 잊고 지낼 때가 많지만, 쇼윈도에 비쳤던 내 옆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어깨도 펴고 등뼈도 꼿꼿이 세워 본다. 두 다리에 무게중심을 똑같이 나누어 실으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또 나는 이제껏 눈여겨보지 않던 것을 어느 결엔가 유심히 보게 되었는데, 바로 다른 이들의 등이다. 얼마 전 한 공공기관에 들렀을 때는 등받이 없는 의자에 나란히 앉은 세 남자의 뒷모습에 눈길이 갔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연배에 비슷한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있었다. 목덜미에서 척추를 타고 내려와 꼬리뼈까지 이어지는 선의 굴곡이 얼마나 제각각인지 새삼 깨달았다. 완만하게 둥근 굽이를 이루는 선. 초췌하게 수그러드는 선. 깐깐하게 낭떠러지를 이루는 선. 얼굴뿐 아니라 등에도 표정이 있었다. 지내온 시간의 표정일 것이었다.
시인 신해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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