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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에세이/9월 28일] 역사는 삶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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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에세이/9월 28일] 역사는 삶의 미래다

입력
2013.09.27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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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정말 상상만으로도 끔찍하지만, 우리나라가 침략을 당하고 나라를 빼앗기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잽싸게 침략자의 앞잡이가 되거나 모른 척하며 제 잇속 차리기에 몰두하는 게 낫다고 여기는 이들이 없을까? 역사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할 것이다. 저항하거나 독립운동하는 건 바보나 할 일이다.

사마천은 역사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지난 일을 잊지 않는 것이 나중 일의 스승이 될 수 있다(前事之不忘, 後事之師也)"고 했다. "미래의 역사적 심판에 맡기자"는 주장은 그래서 자칫 역사적 과오를 저지른 자들의 변명의 구실이 되기 쉽다. 그 말은 "그냥 넘어가자"는 속내를 교묘하게 포장한 수사에 불과하다. 그래서 당대사였던 친일파의 행각이나 해방 이후 반민주적 인사들의 과오조차 제대로 서술하지 못했다. 나중에 그것을 밝혀낸들 그 책임 당사자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박은식과 신채호는 그들의 입장에서 당대사인 우리 근현대사를 연구했다. 는 그런 역사의식의 소산이었다. 당대사라고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런 통념을 깨야 한다. 그래야 역사가 등대가 된다. 눈 밝은 새처럼 앞서 가며 시대상황에 맞는 정신으로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 그렇게 역사의 준엄함이 살아있어야 불의를 자행하고 비인간적 행태를 마음대로 저지르는 것을 막을 수 있다.

1940년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고 비시에 세운 괴뢰정부를 맡았던 페탕 대통령은 자신이 프랑스를 위해 역사의 짐을 맡았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전후 프랑스는 그들을 조금도 용서하지 않았다. 고작(?) 4년간 점령군 독일에 협력했던 부역자를 엄단했다. 무려 7037명이 사형선고를 받았다. 르노자동차는 독일군에 무기를 만들어 제공했다는 이유로 전후 국유화되었고 사장은 옥중에서 생을 마쳐야 했다. 그러니 공직 추방이나 공민권 박탈자의 수는 굳이 언급할 것도 없다. 그런 기개가 바로 '역사의 준엄함'이다. 해방 직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도 잔존 친일기득세력과 이승만의 야합으로 무산되었다. 우리의 현대사에서 한 차례도 친일과 독재의 잔재를 완전하게 청산하지 못한 것은 그래서 두고두고 부끄러운 일이며 역사의 부채로 남는다. 역사의 가치는 인간이 무엇을 해왔는가, 그리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반성함으로써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늘 깨어있는 정신으로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도, 승자의 자서전도 아니다. 그것은 개인으로서의 인간과 보편적 인류의 가치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그리고 그 깨달음을 토대로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성찰하는 단서이다. 그것은 살아있는 시간이며 그 속에서 살아있는 인간의 좌표를 확인할 수 있다. 면면히 이어가야 하는 보편적 인간가치를 깨닫게 하는 역사는 그래서 인문학의 중요한 하나의 축이 된다. 거더 러너는 역사를 아는 것이 "당신 자신의 인생과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길이며, 자신의 과거에 무지한 사람들은 사회에서 어떠한 대접을 받아도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역사는 당당하게 살아있다.

역사는 기술하는 방식인 사관(史觀)에 따라, 또는 기술하는 사람(사관·史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방식이나 사람이건 사람에 대한, 삶과 죽음에 대한 올곧은 생각(사관·死觀)이 그 바탕에 깔려야 한다. 이념이나 속셈에 휘둘리면 안 된다. 그걸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자들은 가장 못된 이들이다. 역사는 겸손하되 당당한 객관성과 세계관, 그리고 인생관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런데도 친일세력조차 근대화에 기여했고 독립운동했다며 왜곡하고 강변하는 그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소설 에서 조지 오웰이 했던 말이다. 지금 우리는 '그런 1984년'에 살고 있는 모양이다.

*지난 14일자 본 칼럼에 게재된 '설국열차 유감'의 일부 내용과 관련, 만화 의 첫 출판사는 판권 계약을 연장하려 했으나 글에서 언급된 에이전시가 가로채 현재의 출판사에 넘겼다고 합니다.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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