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일본 도쿄 도심 시위에서 나온 구호는 "차별을 멈춰라" "함께 살자"였다. 이 짧고 간단한 구호가 말해주듯 이날 시위의 주된 목적은 평등과 공존 의식의 전파였다. 사흘 뒤에는 무라야마 전 총리,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등이 참여하는 지식인 모임이 꾸려졌다. 특정 민족이나 외국인을 혐오하지 말자는 것이 모임의 취지다.
누구나 공감하는 이 당연한 가치의 확산 운동에 한국과 일본의 언론이 특별히 주목한 것은 일본에 차별과 혐오증이 그만큼 팽배해있다는 사실을 역으로 보여준다는 대목이었다. 일본 내 차별과 혐오증의 주된 대상이 재일 한국인이라는 점은 우리를 더욱 당황스럽게 만든다. 실제로 도쿄 신오쿠보 일대 코리아타운에서는 "한국인을 죽여라"는 일본 극우 청년들의 외침을 쉽게 들을 수 있다. 한국인을 바퀴벌레에 비유하고 한국 여성을 성폭행하자는, 엽기적이고도 저급한 주장이 수도 한복판에서 버젓이 울려 퍼지는 것이 21세기 일본의 현주소다.
이들이 재일 한국인을 대상으로 입에 담을 수 없는 언사를 내뱉는 구체적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과 요구가 반한 감정을 부추겼다고 누구는 말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불분명하다. 대기업에 근무하던 30대 남성이 재일 한국인과 조총련계가 일본에서 부당한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주장하는 동영상을 보고 반한 시위에 참가했다는 아사히 신문 기사를 읽으면 이들의 행위가 얼마나 근거가 약한지 알 수 있다.
이런 현상이 일본의 일부 철없는 젊은이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저 멀리 유럽에서도 얼마든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더 우려되는 것은 이들의 행위가 정치권과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지난해 12월 선거를 통해 아베 신조가 총리가 된 뒤 반한 시위가 훨씬 심해졌다. 앞서 언급한 30대 남성 역시 아베를 총리로 만든 것에 성취감을 갖고 있었다. 리버럴한 국가로 알려진 노르웨이는 총선에서 승리한 우파연합의 구성 세력으로 볼 때 강경 이민정책을 쓸 가능성이 높다.
우파연합에 참여한 진보당의 시브 옌센 대표는 "오슬로의 모든 집시를 버스에 태워 발칸반도에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고, 2년 전 민간인 77명을 숨지게 한 테러범 아르네스 베링 브레이비크는 한때 이 정당 소속이었다. 프랑스에서는 마뉘엘 발스 내무장관이 "집시는 (고국인) 루마니아나 불가리아로 돌아가라"고 했고, 반이민을 외치는 극우 인민전선이 급부상하고 있다. 그리스에서는 인종 차별에 반대한 가수 파블로스 피사스가 극우 황금새벽당 당원에 의해 피살되는 일이 일어났다.
이 같은 민족 차별과 타민족 배척 행위의 이유로 흔히 경제 불황과 치안 불안을 댄다. 외국인들이 일자리를 가로채고 그들이 사회를 불안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르웨이가 실업률이 비교적 낮고 경기가 괜찮았다는 사실을 보면 이런 이유가 반드시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좀 더 근본적으로 들어가면 여러 이유로 좌절하는 사람들이 누군가를 향해 자신의 분노를 분출하려는 비겁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필요한 것은 좌절의 이유를 제거하려는 노력과 분노를 누를 이성의 확산이다.
사람이 민족 혹은 인종이라는 모습으로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민족이나 인종은 달라도 생각이 같고 취미가 같고 관심사가 얼마든지 같을 수 있다.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이 민족의 차이를 뛰어넘는 크고 작은 가치를 공유하는 데 있는 것 같다.
박광희 국제부장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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