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였던 레너드 로스먼은 은퇴 후 지도 수집광으로 변신했다. 기독교 성지 지도를 900장이나 갖고 있는 그는 침실 옷장 옆 미닫이 벽장 안에 220만점의 또 다른 지도 컬렉션을 보관하고 있다. 여행지에서 구입한 각 지역 지도가 인쇄된 넥타이다. 그는 왜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지도 수집에 열을 올릴까.
'지도광'이라는 뜻으로 저자가 만든 조어인 (Maphead)를 제목으로 내건 책은 이처럼 독특한 지도 마니아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미국의 대표적인 퀴즈 프로그램 '제퍼디!'의 최장기간 우승 기록 보유자인 켄 제닝스는 잡학의 대가답게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지도 괴짜들의 일상을 풀어낸다.
어린 시절 9년 간 한국에서 생활해 일종의 향수로서 미국 지도에 집착했던 저자는 자라면서 자신 같은 맵헤드가 주변에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책에 등장하는 지도 마니아의 기본은 일단 레너드 같은 수집광이다. 별의별 장소에 반드시 가 봐야 직성이 풀리는 장소 수집가들도 일종의 지도 괴짜다. 윈터라는 수집가는 북미의 스타벅스 8,500개 점포 중 20곳을 제외하고 모두 가 봤다. 미국 각 주에서 가장 높은 지점을 모두 가 보는 목표를 위해 모인 장소 수집가들의 모임 '하인포인터스클럽'도 등장한다. 또 호그나우어는 미국의 국립공원을 모두 가 본 사람이다. 도로 위의 맵헤드도 있다. '도로광'을 자처하는 마크와 존은 고속도로의 각기 다른 가로등 브랜드를 구분해 낼 줄 알며 표지판 글씨의 서체가 바뀐 것을 알아차리는 사람들이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활용해 보물 찾기를 하는 '지오캐싱'이라는 게임을 즐기는 이들이 무려 500만 명에 달한다.
저자에게 지도는 물리적인 위치를 표시한 도구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그는 인간이 단지 공간 정보만이 아닌 모든 것을 지도의 형태로 만들려고 시도해 왔다고 주장한다. 1910년대에 등장한 '성공에 이르는 길'이라는 삽화는 '진정한 지식'이라는 터널을 통해서만 '준비 부족'의 산에 성공적으로 올라 '이상향'이라는 문에 들어가게 되는 지도 형식으로 표현돼 있다. 결국 지도는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것을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기 때문에 인생의 모든 측면을 지도로 그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책의 목적은 단지 지도광의 여러 가지 면모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지도란 인생의 흐름을 보여주는 좌표이기 때문에 지도를 만들고 읽어 내는 과정은 인간 역사의 형성을 보여 주는 것과 같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지도광의 길로 들어서는 이유도 인간과 세계가 맺고 있는 관계를 그려 내는 지도의 특징이 마음을 사로잡기 때문이라는 것.
스스로를 지도를 향한 관심이 지대한 지도광으로 여기는 독자에게는 취향의 공감과 확장의 계기를, 그렇지 않은 보통의 독자에게는 독특하고 다채로운 지식과 정보를 제공해 각각 나름의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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