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출간돼 일본 최대 단행본 출판사인 고단샤(講談社)의 논픽션상을 받은 은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의 영향으로 통제 불능에 빠진 후쿠시마 원전을 둘러싸고 1년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복원하고 있다. 일분일초가 가슴 졸이게 만들었던 사고 직후의 원전 상태와 그에 대한 대처로 우왕좌왕하는 긴박한 상황들, 피해 배상을 둘러싸고 후쿠시마 원전을 운영하는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의 밀고 당기는 싸움들을 낱낱이 그렸다.
소설로 쓰려해도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디테일',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남아 있는 단편적인 기억들이 책을 읽어가며 한 줄로 꿰어질 때 밀려드는 흥분 같은 것은 이 책이 바로 논픽션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보통 논픽션들이 소홀히 하는 상황 재구성의 근거를 미주로 분명히 밝혀 놓은 것은 책의 신뢰를 높여준다. 취재나 자료로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대목은 추정 가능한 상상력을 발휘해 완성도를 갖췄다.
사고 직후부터 긴박했던 수주 간, 해수 주입과 전력 공급으로 큰 고비를 넘긴 뒤 피해배상을 둘러싸고 벌이는 줄다리기,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원전 정책을 둘러싸고 정권의 명운이 엇갈리는 과정에는 당시 민주당 정부의 핵심 관료들과 원전 운영의 주체인 도쿄전력의 대립 구도가 자리잡고 있다. 물론 정부 내에서도 산업정책을 전담하는 경제산업성과 총리 관저, 재무성의 시각이 다르다. 도쿄전력 안에서도 본사에서 사업을 주무르는 최고위층의 판단이나 책임감과 현장에서 거의 죽음을 각오하고 대처하는 직원들의 움직임이 달랐다. 그들 주변에는 도쿄전력에 거액의 대출을 해주고 떼일 걱정을 하는 대형은행들의 갖은 작업들, 원전 반대와 찬성으로 나뉘었던 일본 언론들의 보도 경쟁이 있었다.
저자는 이 사고를 천재(天災)이면서 인재(人災)라고 말한다. 후쿠시마에서 플루서멀이라는 이른바 재활용연료로 원전 가동을 시도하고 싶었던 도쿄전력은 그 지대가 큰 지진이 일어날 수 있는 활단층에 인접해 있다는 걸 애써 알리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중삼중의 안전장치를 갖춰 후쿠시마 원자로에 운석이 떨어지는 수준의 천재지변이 나지 않는 한 어떤 재난에도 무사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비상발전기까지 포함한 모든 전력원이 끊겨버리는 상황을 상정하지 않았다. 원자력 행정과 안전을 담당하는 관료도 마찬가지였다.
회사 출장을 연장해 개인여행을 즐기다 지진을 맞았다가 사태가 한참 진행중일 때 아프다고 병원에 입원해 버리는 사장, 핵연료봉이 녹아 원전 바닥으로 떨어지는 멜트다운을 우려한 원전대국 미국, 프랑스가 자국민 대피령을 내린 상황에서도 원자로 냉각을 위한 해수 주입을 주저하는 간부 등 도쿄전력 본부의 고위층은 무능과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준다. 총리, 관방장관, 경제산업성 장관 등 핵심 관료들은 실시간 정보 공유나 소통에서 결정적인 문제를 드러냈다.
어쩌면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이 정도로 수습되고 있는 것이 천혜(天惠)인지 모른다. 원자로 용기 밖의 사용후 핵연료 저장조로 연료봉을 모두 옮겨 놓은 4호기에 물이 없어 멜트다운이 일어났다면, 수소폭발 등을 일으킨 1~3호기에서 더 큰 폭발이 일어났다면 도쿄 등 수도권까지 무려 3,000만명이 심각한 피폭의 위기에 놓일 상황이었다.
이 책은 수상에 값하는 훌륭한 논픽션 그 이상이다. 우선 일본뿐 아니라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사건 상황을 재구성했다는 시의성이 돋보인다. 아사히신문 기자인 저자가 직업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한 덕분이다. 그보다 높이 평가할만한 것은 사고 상황 묘사에 그치지 않고 그것이 반원전 정책으로 쏠려가던 당시 민주당 정권의 몰락으로 어떻게 이어졌는지, 그 속에서 어떤 힘의 메커니즘이 작동했는지까지 파헤쳤다는 데 있다. 이 책은 단지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원전을 운영하는 모든 나라가 겪게 마련인 정치적인 선택과 갈등에 대한 보고서다. 당신이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다룬 책 중 무언가 한 권쯤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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