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10월9일)이 23년 만에 공휴일로 돌아왔지만 첫 시행부터 국민의 무관심에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26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최근 국민 2,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전화 설문조사에서 한글날이 공휴일이 아니라고 응답한 사람이 31.5%에 달했다. 한글날을 국경일이자 공휴일이라고 정확하게 답한 이는 52.2%였다. 국민 절반이 한글날에 무관심하고 그 중 상당수가 쉬는 날인지 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다.
휴일이 너무 많아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1991년부터 공휴일에서 제외된 한글날은 '관공서 휴일에 대한 규정 일부 개정안'이 지난해 12월 24일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공휴일로 재지정됐다.
지정된 지 9개월이 넘었는데도 아직 일부 달력과 다이어리, 상당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는 한글날이 '빨간색'이 아닌 '검정색'으로 표시돼 있다. 한글날 재지정 사실을 몰랐던 업체들이 지난해 공휴일 정보를 반영해 제품을 제작한 것이다. 사용자들도 혼란을 느껴 최근 온라인상에서는 '한글날이 공휴일이냐 아니냐'를 놓고 설전이 오가기도 했다. 직장인 이지순(31)씨는 "다이어리에 9일이 평일로 표시돼있고 관련 뉴스를 접하지 못해 쉬는 날인 걸 전혀 몰랐다"며 "회사가 그날 쉬는 지도 확실치 않다"고 말했다.
일선 학교도 혼란을 겪고 있다. 서울 마포구 S고등학교는 한글날이 공휴일로 재지정된 것을 모르고 당일에 봉사활동, 시험 등 계획을 짜놓았다가 고심 끝에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학교 관계자는 "원래 공휴일에는 수업을 못하게 돼있지만 이제 와서 일정을 바꿀 수 없어 양해를 구하고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한글날 홍보를 담당하는 문화부는 태평하다. 한글날 경축식 때 배포할 책자 7,000부를 제작한 것 외에 공휴일 재지정과 관련한 홍보에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상태다. 문화부 관계자는 "국민들이 한글날을 잘 모르는 데는 홍보 부족보다 한글 자체에 대한 의식 결여나 관심 부족 탓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글날 공휴일 재지정에 앞장섰던 시민단체 한글문화연대의 이건범 대표는 "한글날 공휴일 재지정에 대한 열망이 컸던 만큼 앞으로 일회성 행사보다는 국민적 관심을 이어갈 수 있는 상시적 홍보와 지원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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