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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9월 27일] 기다린 만큼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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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9월 27일] 기다린 만큼만 온다

입력
2013.09.2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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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역에서 본 어느 연인의 풍경이다. 여자 친구가 기차에서 내린 남자 친구를 심하게 몰아세운다. 전화기가 꺼져 있었다는 이유로 남자는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혼나고 있다. 그 정도로 끝날 줄 알았다. 여자 친구는 자신이 두 시간 동안 기다린 역사를 높은 톤으로 외쳐대기 시작했다. 배터리가 다 닳은 전화기가 죄지, 꺼진 전화기로 연락을 하지 못한 남자가 죄일까. 나는 그들 옆을 스치면서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부터도 잘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이니 당연하다 싶다가 문득 이 시대의 묘한 상실감들이 기다림을 사용하지 않아서 생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몰려들었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를 해야겠다. 내가 열 살이었을 시절의 이야기다. 우리 집은 아이들의 교육문제로 일찌감치 상경을 감행했다. 서울에 오니 당장 같이 살았던 할아버지 할머니가 자꾸 눈에 밟히는 게 큰 문제였다. 방학이면 혼자라도 시골에 가겠다고 식음을 전폐하고 시위를 벌였다. 혼자 네 시간을 기차를 타고 제천역에 내려 고모를 만나고 고모가 하루에 한 번 있는 버스를 태워주는 것이 시골로 향하는 나의 여정이었다. 당시 나의 고향은 마을까지 버스가 들어가질 않아 종점에서 5킬로 정도를 걸어야 하는 것은 물론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마을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정말 이상한 것은 지금처럼 전화도 없어서 어떤 연락도 취할 수 없었던 그 시골 마을에 내가 방학이 되어 내려갈 때면 항상 할머님이 동구(洞口) 밖에 나와 서 계셨다는 사실이다. 일찍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기억 몇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기억이 바로 그것인데, 그 비밀을 바로 몇 달 전 아버지와 대화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제가 가는 걸 어떻게 알고 항상 동구 밖에 나와 계셨을까요?"

"방학만 되면 항상 나와서 널 기다리셨던 거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목이 타는 것 같기도 했고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 기다림이 있었다. '기다림의 시대'라 할 만한 시절도 분명 존재했었다. 기다림이 사람의 기본이었고 사람의 바탕이었던 시대 말이다.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시간이 맞는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기다림의 또 다른 정의라 믿는다. 간절함은 기회를 부르고, 우리가 원하는 것은 때와 일치하고 그 순간 어떤 빛이 발광하는 순간은 온다.

추석 연휴 동안 TV에서 본 영화 에도 기다림에 대한 개념이 매혹적으로 그려진다. 야생에 길들여진 소년이 음식을 보면 참지 못하고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는 걸 본 소녀가 소년을 길들이기 위해 기다림의 개념에 대해 훈련을 시키는 장면은 이제는 개념조차 희미해져버린 기다림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당장이 아니면 안 되는 것들이, 당장이라도 손에 쥘 수 있는 것들이 흔해빠졌다고 해서 기다려야 마땅한 것들의 가치와 의미가 소멸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기다림을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인식하지 않는 사람들은 기다림은 손해를 늘리는 일뿐이라며 피하거나 차단하려 든다. 하고 싶은 것이 그토록 분명한데도 하고 싶은 것에 과감히 사표를 내는 사람들도 너무나 많다. 원하는 게 있는데 기다릴 줄 모른다는 것은, 이토록 저마다 외로운데도 기다릴 줄 모르는 것은 차라리 신이 내린 형벌 같다.

기다림을 어디에 쓰는 것인지 알아야 한다. 살면서 하루 한번쯤은 기다리는 걸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토록 중요한 사실들을 어디다 팔아 치웠다. 고장 난 시계에다 더 이상 태엽을 감지 않겠다면서 기다림이라는 가능성을 제거했다.

이쯤에서 무엇을 기다려야 하는지를 물어오는 이도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 열 번만 물어보라. 자신만이 똑 부러지게, 완벽하게 대답할 수 있다. 자신을 향한 그 질문조차 회피하면서 기다림 없이도 잘 살 수 있을 거라 믿는다면 우리의 삶은 그쯤에서 끝장이다.

기다려야 굳는 관계가 있다. 기다려야 오는 게 있다.

이병률 시인ㆍ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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