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6일 기초연금 공약 후퇴를 선언하고 머리를 숙인 것은 사실상 대선 당시에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대선 후보시절 박 대통령이 기초연금 공약을 처음 들고 나왔을 때부터 새누리당 내부에서조차 막대한 재정 부담을 이유로 "실현가능성이 없다"는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박 대통령이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자신의 핵심 지지층인 50, 60대 이상의 중장년층 표심 공략을 위해 무리수를 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씩을 지급하겠다"는 기초연금 공약은 18대 대선을 한달 보름 앞둔 지난해 11월 5일 새누리당 후보인 박 대통령이 대한노인회를 방문한 자리에서'깜짝 선물'로 내놓으며 처음 등장했다. 문재인 전 민주통합당 후보가 내놓은 "소득 하위 80% 노인에게 기초노령연금 2배 인상"공약과 비교해 박 후보 캠프에서는 "소득과 관계없이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씩"이라고 홍보하며 중장년층 표심을 파고들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민주당도 재원을 감당할 수 없다며 '좀 더 센 공약'을 주저하던 상황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박 후보가 표를 위해 무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두 번째 대선 TV 토론회에 나와 "공약을 발표할 때 재원조달 방안을 함께 검토해서 실현 가능성이 없는 공약은 아예 뺐다"며 공약 이행을 자신했다. 특히 박 대통령은 지하경제 양성화, 세수 구조조정 등으로 재원 마련이 충분하다며 "증세 없는 복지"를 못박았다. 그러면서 기초연금 공약(4년간 14조 6,672억원 소요)을 포함한 5년간 140개 국정과제 수행을 위한 135조원의 공약가계부도 근거로 내놨다.
하지만 이 계산은 얼마 못 가 뒤집혔다.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인 지난 1월 보건복지부는 업무보고에서 기초 연금 공약 이행을 위해 한 해에만 7조~9조원이 더 필요하다고 예상했다. 이에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기초연금 도입은 꼭 돼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인수위는 차등지급안(4만-20만원)을, 이후 각계 전문가가 참여한 국민행복연금위원회에서도 소득 상위 20~30%를 제외하는 방안을 내놓으며 기초연금 공약 이행은 그때 이미 사실상 물 건너 갔다.
지금 정부와 새누리당이 "경기 침체에 따른 재정 여건 악화, 미래세대에 과도한 부담"을 이유로 머리 숙인 것은 이미 예고된 일을 기정사실화한 데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 장기화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닐뿐더러 1년 사이 대내외 경제 여건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재정 부담 역시 이미 수없이 지적된 사항이라는 점에서 '면책 사유'가 될 수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박 대통령은 임기 내 공약 이행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저성장의 경제 여건과 재정 상황을 감안하면 불투명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새누리당 선대위 핵심 관계자는 이날 "캠프에서도 기초연금 공약을 지킬 수 없을 것이란 우려가 진작부터 많았지만 후보 생각이 너무 확고해 쉽사리 말을 꺼낼 수 없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황우여 대표는 최근 기자와 만나 "사실 '기초연금법을 만들겠다'는 구호가 가장 정확한데 선거 때라 효과적으로 내용을 전달하려다 보니 오해가 있었다"며 기초연금 공약이 '과장 광고'였음을 시인했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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