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카타르 건설 현장에서 일했던 네팔 출신 노동자 람 쿠마르 마하라(27)씨는 요즘 구걸을 하며 버티고 있다. 회사가 숙소에서 내쫓고 임금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관리자에게 불만을 토로했더니 나를 폭행했다"며 "돈이 없어 구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22년 월드컵을 개최하는 중동 국가 카타르가 노동 착취 논란에 휩싸였다. 월드컵 개최에 필요한 경기장, 도로, 호텔, 공항 등 인프라를 건설하는데 투입한 외국인 노동자들을 열악한 환경으로 내몬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카타르에서 올 여름 네팔 출신 노동자 수십명이 노동 착취로 사망했다고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신문이 카타르 주재 네팔대사관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6월 4일부터 8월 8일까지 카타르에서 일하는 자국 노동자 44명이 숨졌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심장마비나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가디언은 카타르 건설 현장의 고용주가 이들 외국인 노동자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임금을 고의로 체불하고, 여권을 압수하거나 ID카드 발급을 거부해 불법 체류자로 전락시키며, 사막의 타는 듯한 더위 속에서도 물 조차 마음껏 마시지 못하게 하면서 이들을 현대판 노예 부리듯 착취한다고 전했다. 네팔 노동자 30여명은 이를 견디다 못해 자국 대사관으로 피신했다.
카타르는 외국인 노동자가 노동 인력의 90% 이상을 차지해 자국민 대비 외국인 노동자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외국인 노동자 가운데서도 네팔 출신이 약 40%를 차지한다. 지난해 카타르에 온 네팔 노동자도 10만명이 넘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국인 노동자는 "우리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회사가 두 달치 월급을 고의로 지불하지 않고 있다"고 했고 다른 노동자는 "관리자가 '곧 ID 카드를 발급해주겠다'고 약속하고도 자꾸 미뤄 2년째 ID카드 없이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월드컵 결승전이 열리는 9만석 규모의 경기장 건설 현장에서 일 하는 한 네팔 노동자는 "떠나고 싶어도 보내 주지 않는다"며 "여기 온 것이 후회되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고 체념했다.
신문은 브로커를 통한 혼탁한 고용 시스템이 외국인 노동자를 더 곤경에 빠뜨린다고 지적했다. 취업을 위해 브로커에게 선불금을 내는 등 큰 빚을 지고 왔지만 정작 카타르에서는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해 빚이 더 늘어나는데다 여권도 빼앗겨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마야 쿠마리 샤르마 카타르 주재 네팔 대사는 이런 카타르를 '열린 감옥(open jail)'이라고 비판했다. 가디언은 "부자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이벤트를 준비하기 위해 가난한 나라를 착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카타르 노동부는 "고용주가 제때 임금을 주는 등 노동규약을 준수하도록 주기적으로 단속하고 있다"며 "법을 지키지 않는 고용주는 엄하게 처벌하겠다"고 답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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