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시피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해 비판적인 이들은 다른 아시아 나라들의 침략과 전쟁에 대해 일본이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할 것을 요구한다. 우익적인 인사들은 그런 태도를 '자학적'인 태도라고, 그런 식의 역사관을 '자학사관'이라고 비판한다. 사실 어차피 '국사'라는 게 자국의 인민들로 하여금 하나의 '국민'으로서 동일시하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집단기억이기에, 대부분의 '국사'는 자국민이 하나로 단합한 사건이나 단합할 이유들로 채워지게 마련이다. 그러니 '국사'를 쓰려는 이들이 '자학사관'에 비판적인 것은 차라리 아주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우익 지식인의 역사관이 단지 자랑스런 것만을 남기고 치욕적인 것은 지우려는 단순 무식한 태도에 기인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한다면 그들을 과소평가하는 게 될 것이다. 진지한 역사가가 우익이 되었다면, 그것은 아마도 전쟁 중에 죽어간 자국민에 대한 어떤 공감이나 연민 같은 때문이었을 것이다. 예전에 가토 노리히로가, 결코 우익 지식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죄와 망언 사이에서 동요하는 일본의 역사인식이 '분열된 자아'의 표현이라고 지적하면서, 먼저 전쟁에서 죽어간 300만 국민에 대한 애도를 표함으로써 '자아'를 회복하고 그 회복된 자아가 주체가 되어 아시아의 피해자들에게 사죄를 하자고 주장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우익적인 역사가를 최대한 이해해주려는 입장에서도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이들이 한국의 '뉴라이트' 역사가들이다. 최근 교육부 검인정을 통과함으로써 전면적으로 문제가 된 '뉴라이트' 역사교과서를 보면, 이들이 레프트가 아닌 건 분명한데, 라이트인 건 맞나 싶은 의문마저 든다. 어느 나라든 우익(라이트)은 대개 민족주의적 입장을 취한다. 자국민의 통합, 자국의 발전과 영광을 활동의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뉴라이트'는 민족주의자가 아니라 차라리 그 반대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들이 식민지 지배나 정신대 문제, 일본의 전쟁 등을 다룬 것을 보면, 정확히 일본의 관점에 서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역사관은 일본 역사가가 말하는 것과는 약간 다른 의미에서 일종의 '자학사관'이다. 정신대 피해자를 비롯해 일본의 침략과 전쟁에 의해 자국민이 겪은 고통에 대한 공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식민지배가 야기한 경제적 발전을 상찬하기에 급급하고, 일본인들도 인정하는 식민지 조선인의 피해에 대해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축소하여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한 민족적 자긍심도 없고, 진지한 우익 지식인들이 갖는 자국민에 대한 애정도, 자국민의 고통에 대한 공감도 없고, '민족의 나아갈 길'에 대한 독자적인 고심도 없었던 것 같다. 일본의 우익 역사가들의 관점을 빌어, 여기저기서 표절한 내용들을, 오직 좌파들의 역사인식과 반대되는 방향에서 늘어놓은 것으로 보인다.
왜 이렇게까지 엉망이 되었을까? 주된 이유는 하나인 것 같다. 이들에겐 한국의 '좌파' 내지 좌익 역사가들에 대한 비판이 '우익'이 된 유일한 이유였고, 좌익 역사가의 서술에 반대하는 것이 우익 역사책을 쓰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오직 좌파들이 주도하는 판세를 어떻게 뒤집을지, 거기에 어떻게 대항하며 자신들의 허명을 얻어볼까 하는 '정치적' 고민 밖에는 없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한국의 좌파들이 비판하는 일본 우익 역사가들의 얘기를 쉽게 차용할 수 있었던 것일 게다. 더욱 불행한 것은 역사를 다루는 '실증적' 능력에서도 매우 모자라고, 문장을 다루는 '문학적' 능력에서도 매우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덕분에 검인증 도장을 찍어준 이들 또한, 자신의 안목없음과 안이함에 대한 대가를 함께 치르게 된 것 같다. 새롭긴커녕 아주 저급하고 낡은 라이트다. 아, 제대로 된 '뉴라이트', 진지하고 능력있고 사유의 깊이마저 있는 그런 라이트를 상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기초교육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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