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굵은 돋보기를 낀 할아버지가 파리채 들고 앉아 반질반질 세월의 때가 묻은 중고 놋그릇을 파는 곳. 머릿속에 있는 벼룩시장의 이미지가 이러하다면 센스를 좀 보충할 필요가 있겠다. 오늘날 벼룩시장, 혹은 플리마켓이란 나만의 ‘잇 아이템’을 ‘러블리’한 값에 내 것으로 만드는 방법을 의미하는 일반명사다. 진정 만원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곳들을 소개한다.
▲블링 나이트 플리마켓
매월 첫째 주 토요일 밤 열리는 젊음과 패션의 난장이다. 패션 매거진 블링 주최로 서울 논현동에 있는 복합 문화 공간 플래툰 쿤스트 할레에서 열린다. 사전 신청을 받아 선정된 50팀의 셀러가 개성 넘치는 패션 아이템을 갖고 와 판다. 신인 디자이너들이 젊은 감성의 고객과 직접 만나게 되는 마켓. 수익금을 불우이웃에게 전하는 경매도 열린다. 마켓 디제이가 고른 클럽 뮤직에 몸을 싣고 맥주도 즐길 수 있다.
●도산공원 사거리 맞은편. 매월 첫째 토요일 오후 8시부터 지쳐 쓰러질 때까지. www.thebling.co.kr
▲이태원 계단장
이태원 이슬람 사원 뒤편 장미가 그려진 계단에서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낮에 열린다. 올해 3월부터 시작해 이번 주말 일곱 번째 난장이 벌어진다. 먹고 마실 거리가 풍부하다. 비닐 포장지에 싸여 유통기한이 찍힌 음식이 아니라, 직접 굽고 볶고 찌고, 칵테일 셰이커에 담아 흔든 음식을 판다. 이 동네에 집단 서식하는 아티스트부터 예배를 보러 온 무슬림까지 국적불문, 남녀노소 뒤섞여 독특한 풍경을 연출한다.
●한남동 732번지 일대, 일명 우사단 마을. 매월 마지막 토요일 정오부터 해질 무렵까지. www.facebook.com/wosadan
▲광화문 희망나눔장터
서울시가 주최하는 벼룩시장. 관이 하는 행사답게 취지가 재활용+일자리+문화+나눔으로 다소 거창하다. 벼룩시장답지 않게 시장에 다소 ‘각’이 잡혀 있다는 뜻. 3월부터 10월까지 매주 일요일 오전 11시 장이 열린다. 농민들이 직접 텃밭에서 기른 작물과 유기농 잼 등 먹거리를 파는 ‘농부의 시장’이 장터 안에 마련된다. 셋째 주 일요일엔 광화문 일대의 교통을 막아 차 없는 거리를 만든 뒤 제법 큰 규모로 판을 벌인다.
●세종로 광화문 광장. 매주 일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강수량 5mm 이상이면 휴장. 문의는 120 다산콜센터.
▲홍대 프리마켓(Freemarket)
인디문화의 메카, 홍대 앞 놀이터에서 매주 토요일 오후 벌어지는 예술시장. 이름을 플리마켓(fleamarket)이 아닌 프리마켓(Freemarket)으로 붙인 건 사고파는 게 중고물품이 아니라 언제나 ‘신상’인 창작행위라는 뜻에서다. 그렇다고 전문가만 알아보는 예술을 사고 팔지는 않는다.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생활 속에 쓰임새가 있는 미술작품과 수공예품, 이른바 ‘생활창작품’이다. 인디밴드의 ‘애프터눈 스테이지’는 고객 서비스.
●홍대 앞 바로 그 놀이터. 매주 토요일 점심 먹고 시작해 재미 없어질 때까지. www.freemarket.or.kr
▲서초 토요문화벼룩시장
고정관념 속의 벼룩시장에 가장 근접한 형태의 장터. 1998년 외환위기 때 ‘아나바다’ 운동으로 시작해 벌써 15년이 됐다. 뭔가 색다른 것을 기대한다면 이건 아니다 싶을 수 있지만, 진짜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싼값에 찾는다면 이곳이 정답이다. 하지만 골동품이나 마니악한 수집품을 들고 나오는 서초구민을 만날 수도 있다. 서초구와 자매결연을 맺은 충남 예산, 서천, 청양의 농산물도 저렴한 값에 구입할 수 있다.
●지하철 사당역과 이수역 사이. 매주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연다. www.seocho.go.kr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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