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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문학청년 최인호] 죽음과 맞선 5년, 그어떤 작품보다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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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문학청년 최인호] 죽음과 맞선 5년, 그어떤 작품보다 아름다웠다

입력
2013.09.26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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앓고, 절망하고, 기도하고, 희망을 갖는 혹독한 할례의 의식…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글을 쓸 수 없는 허기… 내가 작가가아니라 환자라는 것이 제일 슬펐기 때문

"죽음과 대면한 최인호의 정신과 태도는 그 자체로 하나의 문학작품이었다. 누가 써도 그대로 소설이 되는 이 작품의 주인공은 물론 최인호 자신이다."

26일 서울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 전날 타계한 소설가 최인호씨의 빈소에서 만난 고인의 절친했던 문우 김형영(69) 시인의 말이다.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가까스로 멈추려 이른 아침 산에 올랐다 빈소를 찾았다는 그는 출판사 샘터에 근무하며 35년이라는 국내 최장수 연재 기록을 세운 자전소설 을 기획하고 진행한 실무자이자, 1987년 가톨릭에 귀의한 고인의 대부이기도 하다. "죽음을 두려워한 것 같지도 않았다. 영생이 있다고 자신했다. 그의 마지막은 작가로서도, 종교인으로서도 더 없이 훌륭했다."

고인이 암 진단을 받은 것은 2008년 5월. 목 부위에 덩어리가 만져져 사돈인 서울성모병원 흉부외과 조건현 교수를 찾았다가 침샘 부위에서 종양을 발견했다. 국내에서 연간 200~300명 정도에게서만 발병하는 희귀암이었다. 이미 병세가 4기까지 진행된 상태여서 바로 암 부위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지만, 1년 후 재발했다. 이때는 이미 폐까지 암이 전이된 상태였다. 고인의 주치의인 강진형 종양내과 교수는 "이미 수술 후 방사선치료까지 마친 상태라 전신적인 항암치료만 가능했다"며 "면역 기능이 떨어져 폐렴에 걸렸던 지난해 봄에는 치료 후유증으로 기도가 좁아져 호흡과 음식물 넘기기도 힘들었다"고 전했다.

5년 간의 투병은 그가 써낸 어느 작품보다도 뜨거웠다. 고인은 올 봄 투병기를 묶어 펴낸 에서 이 기간은 "가톨릭 신자로서 앓고, 절망하고, 기도하고, 희망을 갖는 혹독한 할례의 의식"이었다고 고백했다. 병증이 너무 고통스러울 때는 병원 휴게실에 비치돼 있는 성경책을 꺼내 들고 위로가 될 수 있는 한 구절을 발견하게 해 달라고 간구한 적도 있다. 아무데나 펼치니 눈에 들어오는 구절은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는 마태복음 28장20절. 그는 병보다 무서운 게 걱정과 두려움인 것은 "전능하신 하느님의 자비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여기며, 되레 "지금 이 순간 병상에 누워 계신 환자 여러분"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내 다정한 아픈 사람들아, 그대의 병을 대신 앓고 싶구나. 아프지 말거라, 이 땅의 아이들아, 그리고 엄마야 누나야, 창 밖을 보아라. 새봄이 일어서고 있다."

암 진단 후 고인은 스스로를 "암의 사립문 안에 철저하게 가두는"은거의 삶을 살아왔지만, 문학적으로는 가톨릭 서울주보에 투병기를 연재하고 원고지 1,200매 분량의 장편소설 를 발표하는 등 생애 가장 치열한 시간을 보냈다. "투병 생활 중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글을 쓸 수 없는 허기"였고, "내가 작가가 아니라 환자라는 것이 제일 슬펐기 때문"이다.

2011년 "하나님께서는 나를 나의 십자가인 원고지 위에 못 박고 스러지게 할 것임을 굳게 믿는다"는 '작가의 말'로 시작하는 를 발표하며 오랜 만에 기자간담회에 모습을 드러낸 작가는 "야, 이 자식들아, 나는 살아있다"는 영화 '빠삐용' 속 대사를 인용하며 호쾌하게 웃었다. "내년 만우절에 기자회견을 열어 암에 걸렸다고 한 건 외로워서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이었다, 뻥이었다고 소리치는 게 소원"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이 소설은 항암 치료로 빠진 손톱에 고무 골무를 끼우고, 빠진 발톱에는 테이프를 칭칭 감고 구역질이 날 때마다 얼음 조각을 씹으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원고지 20에서 30매씩 미친 듯이 써서 딱 두 달 만에 완성한 작품이었다.

올해 다시 폐렴으로 입원한 후 퇴원과 입원을 반복하던 고인은 추석 연휴인 20일 병세 악화로 다시 입원했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주님이 오셨다"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영면에 들었다. 마지막 나날까지 새 책을 집필하며 삶이라는 최후의 유작 속으로 걸어 들어간 이 영웅을 기리기 위해, 빈소에는 이어령 전 이화여대 석좌교수, 소설가 김승옥씨, 김한길 민주당 대표, 이수성 전 국무총리, 문학평론가 김병익씨 등 많은 인사들이 조문 행렬을 이어갔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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