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자금난을 겪는 기업의 계열 금융회사에 돈을 맡긴 투자자들은 가슴을 졸일 수밖에 없다.'경제는 심리'란 말처럼 기업부도에 대한 악성루머가 퍼지면 투자자들은 관련 금융사 펀드 환매와 계좌 해지에 앞다퉈 덤벼든다. 바로'펀드 런(fund run)'이다. 2011년 7개 부실 저축은행의 영업정지 사태 당시 예금자들이 돈을 찾기 위해 해당은행으로 달려갔던'뱅크 런(bank run)'과 유사한 일종의 금융 패닉 현상이다.
▲ 1711년 영국 재무장관 로버트 할리가 설립한 '남해회사'는 스페인 정부로부터 아프리카 노예를 남미 스페인령에 공급하는 독점권을 따냈다. 회사는 영국정부의 부실채권을 자사 주식으로 전환해줄 만큼 급성장했다. 1718년 영국-스페인 전쟁으로 노예 무역량이 급감해 경영난을 겪자 영국정부로부터 주식발행 권한을 얻어 금융회사로 변신한다. 회사는 엄청난 규모의 주식을 발행했고, 영국에선'묻지마 투자' 열풍이 일었다. 그러나 본업이 부진했기에 거품이 터지며 주가는 폭락했다. 충격은 은행으로 번져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에선 투자자들의 대규모 '런'이 벌어졌다.
▲ 국내 첫'펀드 런'은 1999년 대우채 환매 사태로 기억된다. IMF구제금융 여파로 대우그룹이 공중 분해되며 대우 채권이 포함된 펀드자금을 빼내려는 투자자 행렬이 쇄도했다. 지급불능 상태에 빠진 투자신탁사들은 환매중단을 선언했다. 결국 정부가 투자자들의 원금을 보장해주기로 하면서 사태는 진정됐다. 2003년 SK 글로벌 분식회계와 LG 카드채 사건이 겹치며 터진 채권형 펀드 대규모 인출사태 당시엔'펀드 런'의 규모가 하루에만 5조원에 달했다.
▲ 동양그룹의 위기설이 불거지면서 동양증권에서 최근 3일간 약 4조원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어서다."동양증권에 예치한 고객자산은 별도기관에 예탁돼 안전하다"는 금융당국의 설명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2년 전 저축은행 사태 당시에도 그랬기 때문이다. 그러나'펀드 런'을 더욱 부추기는 것은 해당 자금 유치를 위해 동양그룹의 위기를 악용하는 타 증권사들의 악성루머다.
장학만 논설위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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