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26일 부실 계열사 부당지원 등으로 회사와 주주들에게 수천억원 대의 손해를 입힌 혐의로 기소된 김승연(61) 한화그룹 회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3년과 벌금 51억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일부 배임 행위에 대한 유ㆍ무죄 판단에서 법리오해 또는 심리 미진 등의 위법이 있다는 취지로, 계열사 부당지원과 세금 포탈 등 대부분 혐의는 원심 그대로 유죄로 판단했다.
김 회장과 한화 측은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실형이 확정될 위기에서 당장 벗어난 데다, 고법에서 일부 혐의에 대해 유ㆍ무죄를 다시 한 번 다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파기환송 재판에서 김 회장의 형량이 줄거나 집행유예를 받을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대법원의 파기환송 취지가 배임죄 인정의 큰 틀은 유지한 채, 일부 잘못 산정된 배임액 등만 다시 따져보라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대법원은 이날 "(계열사 부당지원은) 경영상 판단 원칙이 적용될 수 있는 사례가 아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경영 판단에 따른 정상적인 지시이고, 따라서 계열사에 실질적인 손해가 거의 없었다는 한화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는 오히려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다른 계열사의 일방적인 희생 하에 부실 계열사에 불법적 지원 행위를 지시할 경우 배임죄로 처벌된다는 기존 판례를 재확인한 사례"라고 밝혔다.
따라서 파기환송 부분은 전체 배임죄에 비해 '곁가지 수준'이라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파기된 유죄 부분이 모두 무죄로 뒤집히더라도, 액수가 적어 큰 변수가 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먼저 대법원은 김 회장이 한화그룹 계열사에 자신의 차명 소유 회사인 한유통 등에 지급보증을 서게 함으로써 회사에 8,900여억원의 손해를 끼쳤다는 혐의 가운데 160억원 정도의 배임액 산정이 중복됐다고 지적했다. 지급보증에 따른 배임은 1심에서는 무죄, 2심에서는 유죄로 판단이 엇갈렸던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법원은 중복 계산된 부분을 제외한다면 나머지는 모두 배임이라고 선을 그었다. 원심에서 인정된 부분만 1,797억여원으로 향후 재판에서 160억원 정도가 제외되더라도 형량이 크게 달라지기 어려운 이유다.
대법원이 전남 여수시 소호동 땅의 평가액을 문제 삼은 것은 김 회장에게 유리한 부분이다. 원심은 김 회장이 한화석유화학 소유의 시가 713억원짜리 여수시 땅을 정상가보다 터무니없이 싼 441억원에 팔도록 해 272억원의 손해를 끼쳤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정상 가격이 얼마인지 판단하는 기준인 토지감정평가를 허술하게 했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감정평가를 다시 하라는 주문이어서 이 부분은 재판을 통해 무죄로 바뀔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소호동 땅을 저가로 산 계열사가 인수 합병되는 과정을 다시 심리하라고 했다. 저가에 매각된 땅은 한화 계열사인 웰롭에서 분할된 아크런을 거쳐 이 회사를 인수한 드림파마로 소유주가 변경됐는데 이 과정에서 드림파마가 부동산 가격을 지급한 것이 배임이나 횡령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원심이 무죄로 본 부분인데 재판 결과에 따라서 유죄로 바뀔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대법원 판결에 대해 한화 측은 "무죄였던 부분이 파기된 것도 있어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환송심은) 차분히 준비해서 무죄 취지를 잘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내심 파기 환송심에서 집행유예를 기대하는 눈치다. 형법상 집행유예는 징역 또는 금고형이 3년 이하일 때 가능하다. 김 회장은 지난 1월 구속집행정지 결정에 따라 현재 서울대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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