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스 전적 8-1. 에미레이츠 뉴질랜드팀은 남은 8번의 레이스에서 한번 만 더 이기면 제34회 아메리카컵 요트 챔피언에 오른다. 누워서 떡 먹기 보다 더 쉽게 보였다. 1995년, 2000년 이 대회 정상에 오른 뉴질랜드 팀으로선 통산 3회 우승을 눈앞에 두는 듯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거짓말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미국의 오라클 BMW팀이 에미레이츠 뉴질랜드 팀을 9-8로 꺾고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25일(이하 현지시간)열린 결승전. 명물 금문교가 내려다 보이는 샌프란시스코 해변 10.07해리(약 18.64km)를 돌아오는 단판 승부에서 오라클 BMW가 23분24초에 통과한 반면 에미레이츠 뉴질랜드는 24분08초에 골인했다. 오라클 BMW의 44초차 승리였다. 오라클 BMW가 종합 전적 9-8로 기적 같은 뒤집기에 성공했다. 1851년에 개막해 162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대회에서 역전승 우승은 이전까지 두 번(1920, 83년)뿐이었다.
9월7일 시작된 첫 레이스 이후 18일까지 11번의 레이스에서 에미레이츠 뉴질랜드는 8-1로 앞섰다. 디펜딩 챔피언 오라클 BMW는 4,8회 레이스에서 에미레이츠 뉴질랜드를 꺾었으나 경기규정 위반으로 승점 2점(1회당 1점)을 차감 당해 점수를 올리지 못하는 불리한 조건을 안고 있었다. 오라클 BMW는 그러나 남은 8번의 레이스를 모두 앞서는 괴력의 레이스를 선보였다.
오라클 BMW의 승운은 신구 세대의 조화와 레이스 초반 기술적인 결함을 발견하고 착수한 전면적인 전략 수정이 주효했다.
무엇보다 50대의 경험과 30대의 젊음이 시너지 효과를 냈다. 출전 선수 11명은 미국, 호주, 영국, 뉴질랜드, 프랑스, 이탈리아 등 다국적 출신이지만 우승경험이 있는 지미 스핏힐(34ㆍ호주)과 벤 에인슬리(36ㆍ영국)의 공이 컸다. 선장과 조타수 역할을 겸한 스핏힐은 2010년 대회에서 오라클 BMW와 처음 손잡고 미국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는 당시 30세의 나이로 정상에 올라 역대 최연소 우승자에 이름을 올렸다. 2000년 시드니부터 2012 런던올림픽까지 요트 4관왕 출신 에인슬리는 6~19회 레이스의 전술을 책임져 사실상 대역전극을 이끈 주역이었다.
95년, 2000년 뉴질랜드의 2연패를 이끌었던 러셀 쿠츠(51ㆍ뉴질랜드)는 2010년, 13년 오라클 BMW팀으로 이적해 CEO역할을 맡았다. 뉴질랜드 입장에선 '배신자'와 다름없었다.
대회를 앞두고 "(승점 2점을 차감 당해) 사실상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다"라며 엄살을 피운 오라클 BMW의 주장 스핏힐은 "환상적인 경기였다"며 감격해 했다. 오라클 BMW팀의 사실상 소유주는 오라클 지분 25%를 보유한 래리 엘리슨(69ㆍ미국)이다. 엘리슨의 재산은 포브스 추산 410억달러에 달한다. 요트광으로 유명한 엘리슨은 이번 대회에 최대 5억달러를 쏟아 부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특히 자사의 연중 최대 행사인 '오픈 월드'에 불참하면서까지 이 대회에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엘리슨은 경기 후 "우리 팀의 기술자들이 (이길 수) 있는 암호를 해독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아메리카컵 요트대회 개최 주기는 3,4년이다. 국가 대항전이지만 국적에 상관없이 팀을 구성할 수 있다. 전년도 우승팀과 예선전 1위인 루이뷔통컵 챔피언이 일대일로 맞붙는 형식이다. 2007년 제32회 대회 땐 바다가 없는 스위스의 요트클럽(알링기)이 우승을 차지하는 이변을 낳기도 했다. 한국은 2011년 예선전인 월드시리즈에 '팀 코리아호'를 처음 출격시켜 인연을 맺었다. 일본, 중국에 이어 세 번째다.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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