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2008년부터 이어진 파생금융상품 키코(KIKO)의 불공정거래 거래 논란에 대해 은행 측의 손을 사실상 들어줬다. 이로써 5년이나 걸린 키코에 대한 법적 다툼이 일단락됐다.
대법원은 키코 상품을 환 헤지 목적에 부합하는 정상 상품으로 최종 판단하면서, 은행이 충분히 설명을 한 경우에는 피해 책임을 원칙적으로 기업이 져야 한다고 결정했다. 은행들은 "상식적 판결"이라며 환영했지만 피해 기업들은 "금융사기에 대법원이 면죄부를 줬다"며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양승태 대법관)는 26일 키코 상품에 가입했다가 손실을 본 수산중공업 등 4개 기업이 은행들을 상대로 낸 소송 1, 2심에서 해석이 갈렸던 키코 상품에 대한 법률적 해석과 기업과 은행 사이의 책임 기준을 제시했다.
대법원은 우선 키코가 "환 헤지 목적에 부합한다"며 "키코 구조 자체가 불공정해 계약은 무효"라는 기업 측의 주장을 정면으로 배척했다. 재판부는 "키코 상품은 계약을 체결한 고객이 환율이 상승해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외환현물 보유로 인한 환차익이 발생해 전체적 손익은 변화가 없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키코 상품을 구입한 기업에 대한 은행의 권유 및 설명 의무 기준도 설정했다. 대법원은 은행이 키코 상품을 권유할 때 예상 외화 유입액·재산상태·환 헤지 필요 여부 등에 대한 기업 측의 지식과 이해 정도, 다른 환 헤지 계약 체결 여부 등을 반드시 파악하고, 환율 등 변동요인에 따라 손익이 크게 달라지는 위험한 구조라는 점을 충실히 설명해야 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위험성이 큰 장외파생상품의 거래를 권유할 때 (은행이) 더 무거운 고객 보호의무를 부담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밝혔다.
은행이 대법원 기준대로 충실히 상품을 설명했다면 이후 책임은 전적으로 기업 측이 져야 한다. 특히 기업이 키코 상품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 환 투기 목적으로 계약을 체결했다면, 은행이 설명 의무를 위반했더라도 기업이 손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확정 판결에 따라 소송을 제기한 업체들의 운명도 갈렸다. 수산중공업·세신정밀이 우리·씨티·SC제일은행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반환 청구소송에서는 각각 원고패소 및 원고 일부 승소한 원심이 확정됐다. 같은 취지로 소송을 제기한 모나미는 원고 패소 취지로, 삼코는 심리 미진을 이유로 각각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 됐다.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검찰과 1, 2심 판결 등 무려 5년간의 다툼에 종지부를 찍은 대법원의 이번 판결에 대해 대부분 은행들은 "상식적인 판결"이라며 환영했다.
하지만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는 판결 직후 성명을 내고 "정의 수호의 마지막 보루라고 믿었던 대법원마저 타락한 은행들의 부도덕하고 불법적인 행위를 합법화시켜 줬다"며 "대법원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공대위는 "중소기업들의 장래를 위해 금감원과 정부, 은행에 대해 무제한·무기한 투쟁에 돌입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키워드]
■ 키코: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움직이면 시장가보다 높은 가격에 외화를 팔 수 있지만 환율이 상한선을 넘으면 계약금액의 2~3배를 시장가보다 낮은 환율로 팔도록 설계된 통화옵션 상품이다. 중소기업들은 달러당 환율이 900원대이던 2007년에 환율이 계속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키코에 대거 가입했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환율이 1,400원대까지 폭등하자 막대한 손실을 봤다.
■ 환 헤지: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없애기 위해 현재 수준의 환율로 수출이나 수입, 투자에 따른 거래금액을 고정시키는 것을 말한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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