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라는 물음이 나올 만도 하다. '완득이'(2011)에 이어 2년 만에 출연한 영화 제목이 '깡철이'이라니. 게다가 곤궁한 삶에 짓눌린 모자 이야기라니. 기시감이 강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스스로도 인정했다. "시나리오 제목만 봤을 땐 출연하기 싫었다"고 말했다. "'완득이' 2탄이란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라고 이유를 댔다. 그러면서도 "분명 다른 영화"라며 목에 힘을 줬다. 스물 일곱 이 청춘, 역시나 여전히 당당했다.
신작 '깡철이'의 개봉(10월 2일)을 앞두고 25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유아인을 만났다. 매끈한 얼굴에서 풋풋함이 묻어났고 조리 있게 쏟아내는 말에선 성숙함이 배어났다. 기자의 뭉툭한 질문과 그의 뾰족한 답으로 1시간이 훌쩍 지났다.
'깡철이'는 부산을 배경으로 한 엄마와 아들의 살갑고도 처절한 사연을 풀어낸다. 치매와 당뇨 등으로 고통 받는 엄마 순이(김해숙) 뒷바라지에 진력하다 악의 덫에 걸리는 강철(유아인)의 암울한 현실이 신파적 틀을 형성한다. 눈물을 쥐어짤 듯한 서사인데 영화는 울음을 강요하지 않는다. 삶의 어둠을 떠안으면서도 밝은 곳을 응시하려는 강철의 고투가 가슴을 데운다. 눈물 뚝뚝 흘리면서도 씩 웃는 유아인의 얼굴이 스크린을 환히 비춘다. 울고 있어도 한껏 미소를 지어보라는 영화라고 할까. 유아인은 "완득이는 너무 조숙해서 슬펐는데 강철도 마찬가지다. 강철의 슬픔을 담백하게, 개운한 눈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구 출신인 유아인은 "부산이 배경이라 선택한 영화"라고 말했다. "적어도 부산 사투리가 '완득이'랑 확실히 다른 영화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했다. "엄마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가족이 삶의 본질인 듯하다"고도 말했다. "사람은 가족에서 시작해서 청춘이 되면 자신에게 집중하고 그러다 사랑을 찾게 되잖아요. 저도 인생의 그런 자연스러운 과정을 출연작에 녹이고 싶었어요. 가족을 다룬 영화를 하다 어느 순간 로맨스 영화에 출연하게 되겠죠."
그의 영화 데뷔작은 탈출구 잃은 청춘의 절망을 그린 독립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이다. 남다른 출발 때문일까. 그는 유난히 불우한 인물에 자신의 몸을 내줘 왔다. "재벌보다는 빈곤한 사람이 많은데다 그들의 이야기에 끌리고 그들을 위로하고 싶다"는 게 이유. "머리로 한쪽 눈을 가린 재벌 2세나 백마 탄 왕자는 나랑 어울리지 않는다"고도 답했다.
영화 안에서 강철은 "세상이 깡패다"라고 읊조린다. 영화 밖 유아인도 이 냉소 어린 대사에 동의했다. "이 바닥(연예계)이든 어느 바닥이든 정말 깡패 같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배우가 되기 위해 혼자 상경할 때 엄마가 '서울은 눈 뜨고 코 베어가는 곳'이라 말렸는데 정말 많이 베였다"고도 했다.
병든 엄마란 무게에 허리가 꺾일 듯하던 강철은 결국 "나도 좀 살자"고 눈물로 절규한다. 유아인도 철이와 같은 절박감을 20대 초반 무명 시절에 겪었다고 했다. "혼자 상경해 월세 등이 몇 달 밀리면 정말 죽고 싶었죠. 그때는 예술적으로 충만해 내가 좀 예민해졌다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결국 돈 때문이었던 듯해요."
트위터 등을 통해 사회 현안들에 대한 소신 발언을 해 주목 받곤 한 그는 "항상 솔직하자는 생각에 굳이 안 해도 되는 발언을 하게 되는 듯하다"고 말했다. "거짓말하지 말고 정치적 신념도 지키려는데 그게 참 어렵잖아요.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그러는 듯해요. 솔직한 것이 세련됨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배우로서의 신념은 제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책임지자는 거예요. 물론 저도 돈 때문에 원치 않는 영화에 출연한 적 있어요. 그런 건 누구도 뭐라 할 순 없잖아요."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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