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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안 세 마리 토끼를 쫓다가,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입력
2013.09.26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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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끈한 경제회복이나 공약 실천 크게 미흡하면서도 재정건전성도 악화

2014년 정부 예산안이 ‘세 마리 토끼를 쫓다가,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는 평가를 듣는 건 예산안 편성의 3대 주체인 당ㆍ정ㆍ청이 제각각 상반된 주장을 모두 반영하려 했기 때문이다. 뼛속에 재정건전성 유전자(DNA)가 들어 있다는 소리를 듣는 기획재정부 예산실, 조기 경제회복을 바라는 청와대, 지역사업(SOC와 농촌개발) 축소에 끝까지 저항한 새누리당의 절충 과정에서 누더기 식으로 봉합된 작품이 나왔다는 것이다.

새누리당과 기재부 등에 따르면 이번 예산안은 8차례의 당정협의, 기재부와 청와대의 수시 조율을 거치면서 예산실이 내놓은 당초 방안과 큰 차이를 보이게 됐다. 불투명한 내년 국세 수입에 맞춰 재정지출 규모도 350조원 이내의 긴축 기조로 짜야 한다는 게 기재부 실무진의 판단이었으나, ‘4% 성장률에 맞춰 짜라’는 청와대의 주문과 ‘우리 지역 SOC와 농어촌 사업을 줄여서는 안 된다’는 여당 의원의 요구에 밀려 경제를 살리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것이다. 기재부 고위관계자는 “재정적자 규모를 늘려서라도 보다 재정지출을 더 늘려야 한다는 요구가 잇따랐으나, 현오석 부총리가 설득해 적자를 25조원대에서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론적으로는 양립하기 힘든 당(SOC 사업유지)ㆍ정(재정건전성)ㆍ청(경기회복ㆍ공약고수)의 요구를 모두 담아내려다 보니 2014년 예산안은 그 어느 때보다도 특징이 없는 어정쩡한 모습이 됐다. 이런 이유에서 이번 예산안이 정부 희망대로 경기도 살리고, 국민의 복지수요도 충족시키면서, 재정건전성을 지켜낼 거라고 평가하는 전문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우선 경기 활성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SOC와 산업분야에 대한 재정 투입이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사회간접자본(SOC)과 산업·중소기업·에너지 예산을 각각 23조3,000억원과 15조3,000억원으로 편성했다. 2013년 대비 각각 4.3%와 1.7% 줄어든 것이지만, 공약가계부상 10% 이상을 줄이기로 했던 것과 비교하면 감소폭이 대폭 줄어들었다. 방문규 예산실장은 “단기간의 재정 희생을 통해 경기가 회복돼 세수가 늘어나게 되면서 복지공약 이행을 위한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또 기업 투자를 독려하고자 지난해보다 정책금융 규모를 24조3,000억원 늘리기로 했다.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상 융자나 보험, 보증 지원을 110조원까지 해준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를 끌고 갈 과학기술과 기초연구 역량 강화를 위해 연구개발(R&D) 투자를 강화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내년 R&D 사업에 17조5,496억원을 투입한다는 것인데, 이는 올해 16조8,777억원 보다 4% 늘어난 액수다.

그러나 없는 살림에 돈을 내 SOC 투자와 금융지원을 늘리는 게 실효를 거둘지는 불확실한 측면이 있다. 민간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경기가 여전히 불투명한데다 가계부채 등 내부 문제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홍익대 김유찬 교수도 “정부의 성장률 전망치가 실제보다 낙관적이며,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현 부총리도 “경기 회복은 민간 투자에 달려 있다”고 밝힐 정도로 재정의 역할에 유보적이다.

이렇게 당과 청와대의 요구를 반영하다보니 재정건전성은 우려되는 수준이 됐다. 중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을 회복하겠다는 수치가 제시됐으나, 역대로 ‘내 임기만 아니면 괜찮다’는 식으로 문제를 미뤄 온 관련 집단의 행태가 이번에도 재연됐다는 지적이다. 2017년까지 총지출 증가율(3.5%)을 총수입 증가율(5.0%)보다 1.5%포인트 낮춰, 2017년에는 국내총생산 대비(GDP) 국가채무비율을 35.6%로 낮추겠다지만, 실제로 지켜질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인하대 강병구 교수는 “복지공약을 일부 축소한다 하더라도 재정지출 요인이 워낙 커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며 “증세를 하지 않는 한 현 정부 임기 내에 균형재정을 달성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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