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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새들이 모이는 단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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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새들이 모이는 단체인가?

입력
2013.09.26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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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는 각종 동호인 단체나 협회 회원들이 함께 활동을 하는 좋은 기회였다. 특히 성묘나 벌초를 미리 한 사람들은 소속된 단체의 설립 목적이나 결성 취지에 맞는 활동과 봉사를 하면서 보람 있게 긴 연휴를 보냈을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은 별 볼일 없이 방에서만 뒹굴고 말았지만.

사람은 누구나 학연 지연에 얽힌 단체에 여럿 가입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개인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부여된 조건이다. 하지만 지금은 교우회나 향우회 종친회, 이런 단체들보다는 전공과 기호에 맞는 전문적 동호회의 활동이 더 활발하다. 우리 사회가 많이 달라진 것을 이런 데서도 알 수 있다.

그런 단체나 모임일수록 이름을 잘 지어야 한다. 이름만 들어도 뭘 하는 곳이구나 하고 누구나 알 수 있게 적확하고 분명한 용어로 작명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살펴보면 이상한 단체나 기구의 이름이 참 많다.

한국야생조류협회라는 단체가 있다. 이 협회의 회원은 어떤 사람들인가? 아니지, 야생조류협회라니 사람이 아니라 야생조류, 즉 새들이 회원인 거겠지. 새들이 모여서 구수(鳩首)회의를 한 끝에 탐조활동이나 야생조류 보호를 위한 봉사를 하기로 결정하는 건가? 이 단체의 영문이름이 kwbs, 즉 ‘Korean wild birds society’라니 더 그런 생각이 든다. 대한조류협회라는 단체 이름도 오해를 살 수 있기는 마찬가지다.

전국적으로 회원 수가 많은 야생동물보호협회도 1969년 결성 당시에는 한국조류협회라고 돼 있었다. 그 뒤 1977년 사단법인으로 등록하면서 이름을 전면 변경했다. 조류만 챙기는 조류들의 모임 같았던 단체는 그 이후 새뿐만 아니라 야생동물 전체를 보호하는 사람들의 단체로 거듭났다.

야생동물 보호와 구조를 위해 활동하는 단체에는 이름이 비슷한 게 많다. 한국조류보호협회는 앞에서 언급한 한국조류협회보다 ‘보호’라는 말이 더 들어 있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기가 쉽다. 이 단체의 영문명은 ‘Korean association for bird protection’이다.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는 ‘Korean association of wild birds protection’으로 돼 있다. of보다는 for를 쓴 앞 단체의 표기가 더 나아 보인다.

각종 질병을 예방하고 퇴치하기 위해 결성된 단체에도 이상한 이름이 많다. 대한결핵협회, 대한암협회는 만들어진 지 오래 돼서 그런지 이미 익숙해진 상태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좀 들지만 견딜 만하다. 그런데 한국치매협회는 잘 받아들이기 어렵다. 영어 단체명이 ‘Korean association for dementia’라고 돼 있으니 더 그렇다. 치매에 걸리자는 건 당연히 아닐 텐데. 이에 비해 치매가족협회, 치매예방협회 이런 이름은 얼마나 알기 쉬운가.

치매는 중풍과 함께 국가가 전력을 다해 대처해야 할 주요 현안 중 하나다. 그래서 정부도 지난해 국립중앙치매센터(분당서울대병원)를 만들었을 것이다. 거기까지는 좋다. 서울시와 각 구청이 운영 중인 치매지원센터가 문제다. 아니, 치매를 지원해? 그걸 왜 지원하지? 다들 얼른 치매에 걸리라는 건가? 치매를 지원한다는 말은 다문화가족을 지원한다는 말과 딴판이지 않은가?

무슨 뜻인지, 취지가 뭔지 알 텐데 왜 뚱딴지같이 엉뚱한 소리를 하느냐구? 작명을 제대로 하라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주)한국뚱딴지협회라는 곳도 있다. 뚱딴지는 미국이 원산지인 여러해살이 귀화식물로, 돼지감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단체는 뚱딴지의 생산과 보급을 위해 만들어진 농업회사법인이다. 그런데 이름을 들으면 괜히 웃음이 실실 나온다.

단체명에 설립목적을 알게 해주는 동사(또는 동명사)가 없을 경우 이상해 보이기 마련이다. 대개 명사와 명사를 이어주는 동사가 있으면 뜻이 분명해진다. 그런데도 이런 걸 생각하지 못해 납득하기 어려운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 문제가 단체 이름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고속버스를 타는 지하철역의 이름은 ‘고속터미널’로 돼 있다. 당연히 있어야 할 ‘버스’가 없다. 버스는 어디다 팔아먹은 거지? 글자 두 자 아껴 페인트값 종이값을 줄이려고 그렇게 한 걸까? 그냥 무신경한 탓이겠지 다른 이유가 있었겠어? 칼국수에 칼이 없고 붕어빵에 붕어가 없는 것과 반대로 고속터미널이라고만 해도 버스는 거기 있는 거 아닌가?(내 말도 좀 이상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이상도 하다. 흔히 피로 회복이라고 하지만 피로가 뭐가 좋다고 회복을 하나? 피로는 해소하고 퇴치해도 시원찮을 판인데 사람들은 피로 회복을 위해서 뭔가 자꾸 마시고, 사우나 가고, 누워서 자고, 마사지 받고, 뭔가 별미를 찾아 먹고 그런다. 도처에서 거슬리는 이상한 이름은 바로 그렇게 피로가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지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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