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가 뜨겁다. 천주교는 7월 부산교구의 시국선언을 필두로 이달 23일 전국 15개 교구 4,000여명이 참여한 국정원 대선 개입 규탄 시국미사를 사상 처음으로 서울광장에서 열었다. 이 같은 사회 참여를 두고 '종교인의 양심을 보여줬다'는 지지의 목소리와 '종교가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반대가 맞부딪치고 있다. 내부 논란에도 천주교가 스스로 논쟁의 중심에 선 까닭은 무엇일까.
24일 서울 명동2가 천주교 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난 이 단체 김덕진(39) 사무국장은 "한국 사회가 조금씩 쌓아왔던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가 국정원 사건으로 일거에 무너졌다는 생각으로 평소 사회 참여에 소극적이었던 사제와 평신도들조차 자발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며 천주교의 행보가 유난스러운 게 아니라고 말한다.
"한국 사람들이 술 자리에서 하는 이야기가 보통 정치 아닙니까. 그만큼 정치는 우리 삶에서 뗄 수 없는 부분인데, 인류를 구원하자는 종교가 정치를 배제하고 세속을 떠나 기도만 하자는 게 오히려 부자연스럽지요." 김 국장은 사회 참여가, 그리고 사회적 소수자의 편에 서는 것이 자연스러운 종교의 속성이자 역할이라고 했다. "최하층민 성매매 여성이던 막달라 마리아에게 '죄 없는 사람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고 했던 예수의 삶이 그 근거입니다." 쌍용차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매일 미사도 벌써 170회째 대한문 앞에서 열리고 있다.
하지만 신도들 중에는 반대 목소리도 거세다. 보수성향 신자들은 최근 일부 신문에 '어쩌다가 양(신도)들이 목자(사제)들을 걱정하는 천주교회가 되었습니까'라는 제목으로 사회 참여에 나선 사제들을 비난하는 광고를 실었다. 얼마 전에는 반대자로 짐작되는 사람에 의해 밤새 천주교 인권위의 사무실 간판이 뜯어져 없어지고, 에어컨 실외기 호스가 잘려나간 일도 있었다. 민감한 사안에 논평이라도 내면 항의 전화가 빗발친다.
그는 이런 반대에도 천주교가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 숨쉬며 진화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 진화는 천주교가 과거 죄악시했던 동성애, 낙태까지도 끌어안는 변화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이 매우 이례적으로 동성애자, 낙태 여성, 이혼한 사람 등에 대한 자비를 강조했습니다. 제가 이달 7일 김조광수 감독과 김승환씨의 국내 첫 공개 동성 결혼식의 사회를 봤는데 천주교인들이 지지해준 것도 긍정적인 변화입니다."
천주교의 활발한 사회참여를 긍정적으로 보고는 있지만 그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회는 사제들이 길거리로 나오지 않아도 되는 사회다. "매일 길거리에 나와 미사를 하는 것을 좋아할 사제나 신도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천주교 인권위는 1988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산하 인권 소위원회로 출발, 1993년 별도의 단체로 독립해 지금까지 군 의문사, 교정시설 인권 개선, 사형제 폐지, 용산참사 진상 규명,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등 천주교 안에서도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는 평신도 단체다. 김 국장의 사무실에는 군 의문사 등 관련 소송 기록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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