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시장에서 강자로 군림해 온 동양증권의 명성이 흔들리고 있다. 계열사인 동양그룹의 유동성 위기 불똥이 튀면서 잇따른 펀드 환매와 종합자산관리계좌(CMA) 해지 등으로 벌써 2조원 넘게 빠져나갔다. 대기업 회사채 인수단에서 제외되는 굴욕도 당했다. 설상가상 대규모 집단소송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동양증권은 최대 위기에 처했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동양증권은 다음달 2일 발행되는 7,000억원 규모의 포스코 회사채 인수단에서 제외됐다. 17일 증권신고서 제출 때만 해도 동양증권은 공동주관사였고, 이미 포스코로부터 500억원 규모의 회사채 인수물량을 배정받아 기업실사까지 마친 상태였다.
업계는 포스코가 동양증권을 돌연 제외한 이유를 동양그룹의 유동성 위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동양그룹의 위기가 동양증권으로 번지면서 펀드 환매 등의 파장을 낳고 있는 상황에서 포스코가 회사채 발행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것. 업계 관계자는 "동양증권이 금융감독원의 특별 점검을 받는 등 구설에 오르다 보니 포스코가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배제한 것"이라며 "회사채 발행을 고려하는 다른 기업들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동양그룹이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동양그룹은 동양파워 지분까지 전량 매각할 수 있다는 특단의 대책을 제시하며 자금난을 타개하겠다고 나섰지만, 매일 상환 압박이 돌아오는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물량을 소화할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는 상황이다.
실제 동양그룹이 이달 말까지 만기 도래 회사채와 CP 상환 등을 위해 필요한 자금은 총 2,250억원 정도. 이 가운데 동양그룹은 1,000억원 정도를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동양그룹은 이날 650억원 규모의 무보증 회사채 발행에 나서려고 했으나, 금감원이 증권신고서에 투자위험 요소가 누락됐다며 제동을 걸자 발행을 포기했다.
다음 달에도 4,200억원 규모가 만기 도래하는 등 자금난이 커지지만, CP 발행 등을 통한 자금조달은 더욱 어려워졌다는 점도 악재다. 동양그룹 계열의 CP와 회사채가 투자 부적격 등급을 받아 다음 달 말부터 주요 자금 조달 창구였던 동양증권을 통해 판매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동양그룹이 자금난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 동양증권에 불어올 후폭풍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지금까지 동양증권이 동양그룹의 CP를 투자자에게 판매해 왔다는 점에서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관측 탓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동양증권을 통해 동양그룹 관련 CP를 보유한 개인투자자는 1만5,900명으로 4,563억원 어치에 달한다. 동양증권을 통한 회사채도 3만1,000명이 1조원 규모를 소유하고 있다. 동양그룹이 부도가 나면 투자자들의 피해는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동양증권에 대한 집단소송 움직임도 가시화하고 있다. 금융소비자원은 이날 동양증권의 동양그룹 CP 판매와 관련해 소비자 피해를 접수하고, 집단소송을 통해 강력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조남희 금소원 대표는 "동양증권이 주로 3개월 만기의 동양그룹 계열사 CP를 연장하면서 고객 동의를 받지 않았다는 식의 피해 사례가 수십 건 접수됐다"며 "피해 사례를 더 모아 계열사의 자금조달 창구 역할을 과도하게 한 동양증권에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도 특별 점검에서 동양증권이 관리하는 자산 가운데 특히 동양그룹이 발행한 CP의 판매ㆍ운용 실태를 집중적으로 살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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