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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9월 26일] 너무 빨리 끝난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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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9월 26일] 너무 빨리 끝난 로맨스

입력
2013.09.25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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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이 봉이다. 예의 없는 정부다. 공약을 수정하고, 공약을 정확히 국민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을 바꾸며 책임을 떠넘기는 몰상식한 정부다. 기초연금 논란이 거세다. 별로 놀랄 만한 일도 아닌 느낌이 들어 쓸쓸한 마음 더 하다. 아무 기대감이 없었던 정부가 가을을 빨리 몰고 온 느낌마저 들게 한다. 언론 보도를 보면 정부는 처음부터 기초연금에 대한 공약을 지킬 마음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든 재원을 마련하고 노인들의 복지향상을 위해 공약을 지키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공약을 폐기하거나 수정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 것 같은 인상뿐이다.

기초연금 공약은 지난해 대선에서 박 대통령이 내건 핵심 공약 중 하나였다. 45.1%에 달하는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만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매달 20만원씩 기초연금을 주겠다고 약속했었다. 대선 당시부터 공약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었지만,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재원 마련에 자신 있었다. 돌이켜보면 말뿐이었으니 그리 큰 자신감이 있었나 보다. 당선되자마자 말을 바꾸기 시작했는데, 지난 2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재정 부담을 이유로 들어 기초연금을 소득과 국민연금 가입기간에 따라 월 4만~20만원씩 차등 지급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공약 수정을 예고했었다.

수정안이 나온 지금, 정부를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이야 '그럴 줄 알았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정부와 새누리당을 지지하고 대통령에게 투표한 노인들에게 피부로 와 닿는 서민복지 정책 하나의 변화가 주는 의미는 크리라 예상된다. 불과 10개월도 지나지 않아서 정부와 새누리당이 지향하는 어떤 복지관을 드러낸 셈인데, 지난 대선에서 경제민주화와 서민복지를 큰 정책 화두로 들고 나와 장년과 노년으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선거에서 이긴 결과를 놓고 보면, 그 때의 그 분들이 지금의 이분들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 만치 다른 얘기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정부의 기초연금 수정안을 보자면 꼼수로 가득하다. 수혜 대상을 전체 노인 중 소득 70%로 줄이고 지급액도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연계해 최고 20만원 이내에서 차등 지급하는 방안이 그렇다. 전체 노인 수를 줄여놓은 것, 연금을 길게 내고 적은 액수를 받게 만들어 청장년층에게 책임을 전가한 것도 이해하지 못할 내용이다.

정부는 돈이 없다면 돈을 마련하라. 정부가 해야 할 일이란 그런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 상식 이상으로 부자들에게 세금을 면해주었던 것을 받아내어 충당하라. 걸핏하면 경제상황과 기업의 사기를 들어 국민들의 여론을 외면하지 마시라. 대기업만 힘든 게 아니다. 국민은 더욱 힘들다.

증세는 없을 거라며 호언장담하더니 박봉에 시달리는 샐러리맨들에게 증세하려다가 여론에 밀려 수정한 것이 엊그제의 일이다. 노인들 복지 기금까지 줄이려는 정부는 돈 잘 버는 기업과 부자들에게서 세금을 거둬들여라. 복지와 관련된 정부 정책은 앞으로도 부자감세 안이 철회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어떤 이유에서든지 지지를 받기 힘들 것이다. 지지율과 지지층을 믿고 자만에 빠져 실패한 대통령으로 남은 지난 정권의 과오를 되새겨야 할 것이다. 적어도 자신들을 지지해주고 대통령으로 뽑아준 사람들에게서 등을 돌리지 마시라. 정부가 탄생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배경은 기업이나 부자가 아니라 대부분의 서민 장년과 가난한 노인들의 마음이었음을 벌써 잊어버린 것인가. 불과 10개월 만에 말이다.

로맨스가 너무 빨리 끝나버린 느낌이다. 사랑한다 말해놓고 그건 잘못 알아들은 것이라고 얘기한다. 사랑한다고 얘기했던 것은 아니라고. 허나 사랑은 말로만 하는 게 아니다. 사랑은 주고 싶은 마음이고 아끼는 마음의 표현이다. 정부가 노년들에게 사랑을 증명할 때다. 믿었던 사랑에 대한 배신이 가장 큰 상처로 남는다는 사실을 정부는 알아야 할 것이다. 마음 가지고 장난하면 큰 죄 받는다는 것도 명심해야 할 것. 노인들의 사랑을 유념하고 무서워하시라.

백가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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