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밴드 공연에 90세 할머니도 “꺅, 오빠!”
말 그대로 부창부수(夫唱婦隨)다. 부부가 함께 악기를 연주한다. 아내는 아코디언, 남편은 색소폰을 들고 함께 봉사활동을 다닌다. 한달 평균 10군데를 다니면서 순회 공연을 다닌다. 정겸삼(72), 조순자(71) 부부의 이야기다.
악기를 먼저 시작한 것은 남편 정경삼씨다. 2007년 즈음 적을 올리고 있는 동구 노인 복지회관에 아코디언 연주팀이 공연을 왔다. 그는 봉사자 한명에게 “어디서 악기를 배울 수 있느냐”고 물어 팔공색소폰아카데미를 찾아갔다. 그렇게 연주 인생이 시작됐다.
유명 작곡가에게 가수 제의도 받은 남편
정씨는 사실 젊은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했다. 17살 무렵에 가수 선발 콩쿨에 나가 2등에 입상한 적도 있다. 나훈나의 ‘강촌에 살고 싶네’ 등을 작곡한 김학송 선생에게 가수 데뷔 제의도 받았지만 집안 형편이 여의치 않아 용기를 내지 못했다. 무대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아내 조순자 씨는 “월세 3천 원짜리 단칸방에 살던 시절에 몇 만 원하는 오디오를 사올 정도였다”면서 “반(半) 가수”라고 말했다.
시작은 아코디언으로 했지만 얼마 후 색소폰으로 전공을 바꿨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인 배호의 곡은 색소폰으로 연주해야 제맛이라는 것을 안 뒤부터였다. 색소폰을 잡을 무렵 아내가 악기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남편은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어쩌면 음악이 지금껏 힘들게 살아온 삶에 대한 보상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어요. 애가 셋인데 다들 나이가 비슷해요. 공부 시키는데 돈이 많이 들었죠. 셋이서 동시에 대학에 다닐 때도 있었으니까요. 제가 택시 운전해서 벌어주는 돈으로는 가계가 빠듯했어요. 그래서 보험설계사 일을 했죠. 15년 동안이나요.”
아내의 열정도 남편 못잖았다. 하루에 3~4시간씩 연습하는 건 예사였고, 악보를 반복해서 그리며 곡을 외웠다. 그렇게 부부가 악기를 연주하는 건 동구복지관 500여명 노인들 중에서 이들 부부가 유일하다.
바닷가 여행 중 즉석 공연에 인기 폭발
2010년부터 갈고 닦은 실력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첫 공연은 지하철 신천역 대합실에서 했다. 서너 차례 공연을 했을 무렵 명함을 달라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연락 한번 드리겠다”고 하더니 정말 전화가 왔다. 복지관 대표였다. 공연 봉사를 해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당연히 “OK”였다. 그렇게 봉사 이력이 시작됐다.
“부부가 함께 연주를 하니까 ‘보기 좋다’면서 다들 너무 좋아해 주세요. 저도 아내와 함께하는 게 좋구요. 더 신이 나죠.”
부부는 1년에 한번씩 스타렉스를 타고 3박4일로 여행을 떠나는데, 바닷가 같은 휴양지에서 연주를 하면 어김없이 주변에 사람들이 몰린다. 관광객들도 한결같이 “부부가 연주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다”는 말을 건넨다고 했다. 부부가 매달 연주 봉사를 하고 있는 의 이순영(59) 원장은 “봉사 시간이 다가오면 할머니들의 얼굴에 들뜬 마음이 그대로 나타난다”면서 “특히 정 선생님이 색소폰을 불면 90살 넘은 할머니도 ‘오빠!’ 하면서 소녀처럼좋아한다”고 말했다.
부부의 꿈은 가족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뚱한 반응이다. 악기를 배워보라고 하면 아들, 며느리 할 것 없이 “너무 바빠서 시간이 없다”면서 손사래를 친다. 손녀들이 피아노를 잘 치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제가 그래요. 피아노 열심히 쳐서 할머니하고 연주하자고. 그러면 손녀가 ‘아빠가 공부해야 되기 때문에 안 된대요’해답해요. 그럼 제가 말하죠. 악기 연주하면 집중력이 좋아져서 공부가 더 잘 된다고요, 호호!”
부부의 추진력과 음악에 대한 열정을 놓고 봤을 때는 5년 내로 3대 오케스트라가 탄생할 듯하다.
김광원 엠플러스한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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