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문제, 노인들도 심각합니다
70대 노인들이 1박 2일로 여행을 떠나는 텔레비전 프로가 인기다. 폭발적으로 생산되는 케이블 TV에도 60~70대의 활약이 낯설지 않다. 수십 년 전만 하도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던 나이다. 이른바 100세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세대의 모습이다. 노인들이 점잖고 신중한 이미지에서 탈피해 웃고, 울고, 떠들고, 먹고 마시고 때로 질투하고 사랑하는 ‘백발 청년’의 모습으로 다가서고 있다.
시대에 맞춰 노인 정책도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장기 요양 지원이나 독거 노인 반찬 제공 등 물질적인 부분을 주로 지원했다면 지금은 심리적인 부분에도 관심을 가지는 추세다. 대구중구노인상담소의 강난미(52)소장은 이 분야의 선구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가 맡고 있는 대구중구노인상담소는 대구 중구청이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문을 연 노인 전문 상담소다. 운경재단에 위탁하여 운영하고 있는 이 상담소는 지난해 전국 최초로 노인집단괴롭힘예방프로그램을 개발해 2013년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원사업에 선정됐다. 현재 6개 경로당을 대상으로 주1회씩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강 소장은 “나이 든 분들도 젊은 세대와 마찬가지로 소외, 왕따 등 인간관계 형성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면서 “청소년과 마찬가지로 심리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우리 노인회 회장님이 자꾸 왕따를 시켜요!”
강 소장이 노인 상담에 관심을 가진 것은 2005년 시지노인전문병원에서 운영하는 ‘노인 아카데미’에 상담 수업을 나가면서부터였다. 노인들과 자주 만나면서 어르신들 사이에도 청소년처럼 왕따 문제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던 중, 2009년 즈음 한통의 전화를 받은 것이 프로그램 개발에 나서는 계기가 되었다.
“한 경로당에서 전화가 걸려왔어요. 노인회장이 회원 한 명을 드러내놓고 왕따 시키는데 옆에서 보기가 안타까워 죽겠다고요. 청소년들의 경우 선생님과 부모님이 개입을 하는 반면 노인들은 폐쇄된 사회입니다. 그 노인 분처럼 전화를 걸어오지 않는 이상 심각한 상황을 알 수 없죠. 프로그램을 개발해 공개적이고 체계적으로 돕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강 소장에 따르면 노인들의 왕따도 청소년과 비슷하다. 다만 청소년의 경우 왕따라는 인식을 하기도 하는 반면 노인들은 그런 자각이 거의 없다. 경륜과 경험을 바탕으로 “바른 말 하는 것일 뿐”이라고 믿는다. 노인들은 타인의 행동을 평가하는 기준이 지나치게 높다. 국가적으로 빈한한 시절에 태어나 어려운 시절을 두루 겪으면서 엄격한 삶의 잣대가 몸에 배어 있는 까닭에 왕따를 조장하면서도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에게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가르친다’고 생각한다. 주변에서도 체면 때문에 보고만 있는 경우가 많다. 소위 “싸우다가 정든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괜히 나섰다가 밉상이 될까봐 그냥 알고서도 모른 척 한다. 신중한 태도가 사태를 악화시키는 경우다.
“치아뿌라!” → “그만해 주겠니” 말만 곱게 써도 대부분 해결
노인 왕따의 원인도 알고 보면 사소하기 짝이 없다.
“주로 먹는 것 때문에 많이 발생해요. 노인들의 세계에서는 한 턱 내는 게 중요한데, 그런 형편이 안 되는 노인들에 대해서도 ‘인색하다’고 판단합니다. 이런 난 노인들은 같이 먹을 때 소외되기 마련입니다. 왕따가 되는 거죠. 지병이 있는 노인들도 환영받지 못합니다. 분위기를 암울하게 만든다는 생각 때문이죠.”
프로그램에서는 주로 어떤 행위가 왕따를 만드는지 알려준다. 직접적인 언급보다는 역할극 등을 통해 노인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우선 안 좋은 예를 보여주고 좋은 예를 제시한다. 이를테면 언어 사용에 있어서 거친 말투를 부드럽게 바꾸어주면 이내 박수가 터져 나온다. 흥미 유발을 위해 ‘고운 말 예쁜 말 여왕’을 선정한다. 노인들은 교육 후에는 “습관처럼 하는 말들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소외의 빌미가 된다는 사실을 잘 몰랐다”는 고백을 많이 한다. 노인들이 부지불식간에 ‘왕따’를 유발한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방증이다.
강소장은 왕따 프로그램 외에도 시민 상담 봉사자 양성 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노인 왕따 문제가 가속화 하는 추세에 맞춰 이들로 하여금 일차적인 상담을 담당케 하고 전문가는 보다 복잡한 문제만 다루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강 소장은 “노인으로 살아가는 세월이 30년 이상 되는 현실에서 어르신들 간의 인간관계 갈등은 청소년 못지않게 간과할 수 없는 사회 문제”라면서 노인 왕따 문제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 말고 적극적으로 상담받을 것을 주문했다.
* 강난미 소장 - 계명대에서 심리치료를 전공했다. 2005년부터 동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았으며, 2009년에 시작한 박사 과정에서 노인 상담을 주로 연구하면서 노인 문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김광원 엠플러스한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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