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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플러스한국 인물 - 문경 문화 거리 기획한 조성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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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플러스한국 인물 - 문경 문화 거리 기획한 조성탁>

입력
2013.09.25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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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단 이야기 들으며 ‘시민 문화 혁명’ 성공시켰죠

# 차 없는 문화 거리, 문경 시민의 자부심

“이 거리는 문경 시민의 자부심으로 자리 잡을 것입니다.”

이쯤 되면 ‘시민 문화 혁명’이다. 폭염이 한창이었던 7월 20일, 문경의 압구정 거리라고 할 수 있는 점촌동 구(舊)경찰서 거리에 추석 때보다 더 많은 인파가 몰렸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가수와 연주인들의 공연을 보러 나온 시민들이었다. 2000년대 들어 상권이 쇠락하면서 주차 골목으로 변했던 시가지에 ‘차 없는 문화 거리’를 조성하면서 일어난 변화다.

“2008년에 문화 거리 만들자고 시청에 들어갔더니 숫제 미친 사람 보듯 하더군요.”

문화거리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처음 내고 거리 조성을 앞장 서서 추진한 문화 기획자 조성탁(56)씨의 말이다. 문경에서 태어나 초등학교까지 문경에서 다닌 조씨는 “하루가 다르게 쇠락해가는 고향의 모습이 안타까워 문화 거리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다들 시큰둥했다. 상인들도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조씨는 80여명의 상인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취지와 예상 되는 성과 등을 설명했다. 그의 열정적인 모습에 시큰둥하던 상인들이 얼마 안 가 적극적인 지지자로 돌아섰고, 이들과 함께 2008년부터 문경시에 청원을 넣기 시작했다. 공무원들도 처음에는 손사래를 쳤다. 공사비가 40억, 인구 10만도 안 되는 소도시로서는 거금이었다. “적극적으로 설명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죠. 문화 거리가 활성화 하면 문경 시민뿐 아니라 타지에서도 사람들이 몰릴 거다, 도심공동화를 해결하는데 이만한 방법이 없다, 하는 논리를 폈죠. 한 명 두 명 내 편으로 만든 끝에 승인을 얻어냈죠.”

# 고등학교 때 가발 쓰고 명동서 DJ 활동

조씨의 문화에 대한 확신과 자긍심은 젊은 시절의 이력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중학교 때 서울로 올라가 1988년까지 서울에서 생활했다. 끼가 다분했던 그는 촌놈이라고 기 죽기는 커녕 서울 친구들보다 더 설치고 다녔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는 가발을 쓰고 숙대, 명동 등에서 음악실 DJ로 활약하기도 했다. 졸업 후에는 마대로 굽을 싸고 자수를 놓은 소위 마대 신발을 유통해 꽤 짭짤한 수익도 올렸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소재와 디자인으로 연예인들이 앞 다투어 신으면서 여대생들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인기 디자이너로 승승장구하던 그가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1988년이었다. 부모님이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간호할 사람이 없었다. 간호가 고향에 내려온 것이 삶의 터전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 문화 거리 한켠에 신발 가게를 열었다. 당시 문경 인구는 15만, 지금의 꼭 두 배였다. 경기도 좋았던 때라 저녁 10시에 손님이 있든 없든 가게 셔터를 내려야 했을 정도로 장사가 잘 됐다. 두 군데에 가게를 열어 하루 평균 5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2003년에는 업종을 변경했다. 빵가게를 열었다. 체인점이었다. 역시 장사가 잘 돼 6년 동안 줄곧 매출 순위가 전국 5위 안에 들었다. 인구 10만 내외의 도시에 자리 잡은 빵 가게 로서는 기적적인 매출이었다. 비결은 정직이었다. “하루 지난 빵은 절대 안 팔았습니다. 남은 빵은 모두 인근 파출소에 기부했죠. 얼마나 많이 줬으면 경찰서장 표창까지 받았을 정도입니다. 빵이 신선하니까 당연히 손님이 몰렸을 수밖에요.”

# 물푸레나무 잎사귀 무대, 문경의 상징 될 것

지금 성업 중인 카페를 연 것은 2009년이었다. 취지가 재미있다.

“문경 젊은이들이 커피 메뉴를 잘 몰라요. 큰 도시에 가면 커피 주문이라도 당당하게 하려면 메뉴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커피숍을 열었죠. 지금은 20여개 체인이 들어와 있지만, 당시에는 다방밖에 없었거든요, 하하!”

가게를 열 때도 단순히 장사가 잘 될까, 안 될까 하는 것보다 지역 사회에서의 존재 가치를 고려하는 그가 문화 거리 조성에 ‘꽂힌’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문화 거리는 2012년 10월 공사를 시작해 7월에 절반이상 완공했다. 그는 거리 중앙에 세울 거리 무대가 화룡정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경새재 아이랑에 등장하는 물푸레나무 잎사귀 모양의 지붕을 인 무대를 만들 계획입니다. 무대 조명이 꺼지면 하나의 조형물이 될 겁니다. 문경의 역사와 아리랑이 품고 있는 한국적 정서를 동시에 표현하는 무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거리 공연은 일 년 내내 펼칠 계획이다. 지역 연예 협회를 비롯해 다양한 연주 단체에서 공연 문의를 해오고 있다. 조씨는 “조만간에 문화가 흐르고 사람이 고이는 거리로 전국적 명성을 얻을 것”이라면서 “한때 석탄 도시였던 문경이 거리 문화로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맞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김광원 엠플러스한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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