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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블루 재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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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블루 재스민'

입력
2013.09.25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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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우디 앨런과 뉴욕은 한 묶음이었다. '안경 쓴 찰리 채플린'이란 별명으로 이름을 드높일 때부터 그의 영화 속 뉴욕은 밀쳐내면서도 끌어안게 되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뉴욕의 풍광은 우울증에 시달리는 수다쟁이를 종국엔 늘 끌어안았다. '애니홀'과 '맨해튼' 등이 앨런의 대표작이자 뉴욕을 가장 낭만적으로 그려낸 영화로 평가 받는 이유일 것이다. 앨런이 2000년대 뉴욕을 떠나 유럽을 전전하며 영화를 만들 때 사람들은 변신을 입에 올렸다. 인생에 대한 날카로운 냉소와 영화의 빼어남은 여전했으나 관광엽서를 연상케 하는 배경들이 스크린을 채웠다. 풍광은 더 화려해졌으나 삶을 바라보는 시선은 더 차가워졌다는 평이 따랐다.

'블루 재스민'은 런던('스쿠프')과 바르셀로나('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파리('미드나잇 인 파리'), 로마('로마 위드 러브') 등을 떠돌던 앨런이 미국으로 돌아와 모국의 삶과 풍경을 다시 그린 영화다. 뉴욕의 안온함은 사라지고 허영과 쓸쓸함에 대한 조소가 가득하다. 미국 자본주의의 심장 뉴욕을 황금광의 도시 샌프란시스코와 대치시키며 현대 사회의 덧없는 욕망을 야유한다. 어두운 유머들이 종종 웃음을 끌어내며 결국 스산한 기운이 가슴을 휘돌게 한다.

성공한 투자자의 아내로 뉴욕에서 상위 1%의 삶을 영위하다 영락한 재스민(케이트 블란쳇)이 스크린의 중심이다. 재스민은 빈털터리가 된 채 샌프란시스코의 가난한 이복동생 진저(샐리 호킨스) 집에 얹혀 살게 되지만 허영기는 여전하다. 컴퓨터 학원비가 없을 정도로 빈곤하나 루이뷔통 가방을 버리지 못하고 비행기는 일등석을 탄다. 그녀는 진저의 노동자 애인을 경멸하고 새로운 명품 신랑감을 잡기 위해 진력한다. 물질적 삶의 공허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본능처럼 돈에 매달리던 그녀는 한바탕 소동을 거치면서 결국 반복되는 냉혹한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앨런은 재스민을 지렛대로 탐욕스런 미국 자본주의의 비루함을 들춰낸다. 경제 거품 속에서 호사를 누리고 여전히 숙취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재스민의 삶은 돈에 눈이 멀어 도덕 불감증에 걸린 미국 상류층을 은유한다.

블란쳇의 연기가 발군이다. 가냘픈 몸매마저 신경쇠약에 걸려 혼잣말을 내뱉곤 하는 허영 덩어리 재스민을 위해 만들어진 듯하다. 노대가의 농익은 연출은 더 할 나위 없다. 25일 개봉했다. 15세 이상.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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