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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색다른 멋 전통 고기잡이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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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색다른 멋 전통 고기잡이 체험

입력
2013.09.25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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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라는 섬에 다가서는 다양한 방법들. 몇 가지 꼽아 보자. 신혼부부 밀려와 똑같은 사진 찍기 구경하는 섬, 이건 좀 오래됐다. '놀멍 쉬멍 걸으멍' 발자국의 간격으로 지구의 크기를 재보게 되는 섬, 이건 가장 핫한 방법이다. 화산석과 곶자왈과 유배의 역사를 공부하는 섬, 여행길에서도 기어코 주제를 찾는다면 이런 방법도 있다. 엄마아빠는 골프장에서 아이는 테마파크에서 돈을 쓰는 섬, 아마도 이건 당신의 지난 여름 휴가… 그런데 늘 생각지 못하는 제주의 모습이 있다. 제주에 사는 사람들도 곧잘 잊어먹는다. 그건 이 섬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먼 석기 시대부터 계속돼 온, 어쩌면 가장 본질적인 제주의 모습일 것이다. 바로 고기 잡는 섬, 어촌(漁村) 제주다.

"그게 힘으로 된대요? 기술이 있어야지. 불질을 하다가 멜(멸치)이 보이면 말이지, 얘들이 크게 방향을 틀어 따라올 수 있게 원을 그려줘야 해요. 너무 천천히 하면 멜이 흩어지고, 너무 빨리 하면 멜이 못 쫓아오지."

제주시 삼양동 검은모래해수욕장 앞바다에 뜬 횃불을 발견한 건 반은 우연이고 반은 집요한 추적의 결과였는데, 여하튼 제주 사람들도 이제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횃바루(횃불을 이용해 바닷가에서 그물질을 하는 전통 어법)'를 목격한 건 운이 좋았다고 해야겠다. 불질하는 남자는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란 고재훈(58)씨. 동네 이웃들과 뒤엉켜 첨벙첨벙 멜을 건져 올리는 모습은 어로행위라기보다 달밤의 물놀이에 가까웠다. 그 풍경이 정겹고 아늑했다. 추석을 며칠 앞두고 물때가 사리에 가까워서, 수십 번 그물을 채우고도 넘쳐나는 멜떼가 그득그득, 까만 수평선으로부터 차오르고 있었다.

제주 고기잡이 일반에 대한 얘기부터 좀 하자. 제주 사람들에겐 바다가 밭(제주말로 '밧')이었다. 소라가 많이 잡히는 곳은 구젱기밧, 자리돔이 사는 곳은 자리밧, 미역을 캐는 곳은 메역밧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제주도 넓이가 18만 정보라는 건, 순전히 뭍에 사는 사람들의 기준일 뿐. 그 수십 배 되는 문전옥답을 제주 사람들은 나눠 갖고 있었던 셈이다. 땅문서도 세경도 필요없는 이 밭을 수천 년 갈아먹고 살아온 것이 제주의 삶이었기에, 이 섬의 말과 풍습, 생각이 육지와 다른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어로의 방식도 달랐다. 냇물의 하류를 막고 썰물에 고기를 잡는 '목맥이', 한라산 삼나무로 만든 뗏목으로 자리돔을 뜨는 '테우' 등이 제주의 전통 어법이다. 동력선과 유자망과 트롤에 밀려 이제 자취를 감췄다. 흔적만 겨우 남은 것이 원담이다.

"해신제 끝나는 날쯤이었나… 마을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 돌을 쌓아 만들었지. 원땅(원담)은 우묵하게 팬 곳에다 만들어야 돼. 물에 잠길랑 말랑 하게. 밀물이 들었다 썰물이 돼 나가면, 미처 못 돌아간 고기가 갇혀 있게 마련이지."

원시적이지만 과학적인 원리다. 조수를 이용해 바닷가 마을에서 큰 힘 들이지 않고 찬거리를 구할 수 있었던 수단이 원담. 그런데 제주시 신촌리 이모열(65)씨의 기억에 따르자면 원담은 마을 공동의 텃밭 같은 것이었나 보다. 이렇게 했단다. 아침에 제일 먼저 바다에 나간 사람이 원담에 뭐가 담겼는지 살펴본다. 요즘 같은 초가을은 참멸치가 밀려오기 시작하는 철. 소라나 전복도 심심찮게 온다. 하지만 이런 바닷가에선 저 혼자 먹겠다고 욕심 부리다간 동티 나는 법이다. 몸으로 체득하게 되는 윤리다. 처음 발견한 사람이 "멜 들었다"고 크게 외친다. 그러면 옆집, 앞집, 뒷집 아주머니들이 소쿠리나 세숫대야를 들고 나온다. 식구 수대로 골고루 가른다. 반백년 전까지 제주 바닷가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아침 풍경이 그러했단다. 너나없이 배곯던 시절, 보리농사 짓는 사람이 최고 부자였던 제주에서 해안 가득 밀려오는 멜떼는 얼마나 고마운 존재였을까.

"얘 좀 봐요. 아가리가 제법 크잖아요. 이놈이 가을에 오는 참멜이에요. 봄에 잡히는 아가리 작은 놈들은 꽃멜이지. 맛? 멜도 등푸른 생선이니까 아무래도 가을철이 낫지 않을까요?"

다시 횃바루 얘기. 한 시간 남짓한 횃바루에 가로 세로 높이 각 50㎝쯤 되는 박스를 다섯 개 채울 양의 멜을 잡았다. "훅-훅-" 고씨가 거친 숨을 몰아 쉬었다. 바닷속을 빠르게 유영하는 멜을 불빛으로 유인하기 위해서는 꽤 빨리 움직여야 한다. 체력 고갈이 심한 어법이다. 그러나 리듬을 제대로만 탄다면, 불빛을 좇아 수면을 뚫고 떼로 뛰어오른 멜이 온몸에 부딪치는 짜릿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달빛에 반사된, 살아 있는 싱싱한 은빛을 몸으로 맞는 기분이 황홀했다. 먼 바다에서 배로 잡아온 멸치 그물을 터는 풍경을 구경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류의 감흥. 그런데 저 멜은 어쩌자고 사람 사는 바닷가까지 밀려와 불빛을 보고 뛰어오르는 것일까. 고씨의 설명이 이랬다.

"얘들이 고등어나 돔 종류의 먹이잖아요. 그래서 덩치 큰 고기들의 먹이 활동이 활발해질 때면 도망쳐 오는 거에요. 살려고. 그렇게 와 주니까 또 우리 같은 바닷가 사람俑?사는 거고. 지금이야 재미로 잡지만, 전엔 이게 구황 식량이었으니까."

9월 중순부터 잡히기 시작하는 제주 참멜은 늦가을까지 점점 잡히는 놈들의 씨알이 굵어진다. 아직은 젓갈을 담가 먹거나 튀겨 먹을 수밖에 없는 크기다. 10월 말이면 회로 먹기 좋은 크기, 한 달 정도 더 지나 잡히는 것은 구워 먹기에 딱 좋은 크기가 된다. 제주 전통 요리법엔 호박잎을 썰어 넣고 끓이는 국도 있다. 제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석쇠불에 왕소금을 뿌려 구워 먹는 멜. 가을, 제주의 재래시장 어디서나 그 맛을 볼 수 있다. 물론 횟집에서도 고급스레 구워서 판다. 하지만 어촌 좌판에서 먹어야 제 맛이 난다. '스키다시' 가득 깔아 놓고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까지 메뉴판에 적어놓은 집에서, 고기 잡는 마을 제주의 참맛을 기대할 순 없을 테니까.

참고 (정기태 지음ㆍ바보새 발행)

어촌체험이 가능한 제주의 마을

■사계마을: 서남부 안덕면에 있다. 가파도를 바라보는 2.7㎞ 해안을 따라 마을이 형성돼 있다. 미네랄이 풍부한 홍해삼과 돌문어가 이 마을의 특산품. 소라, 게, 고둥 등을 직접 채취하는 바릇잡이와 해녀 물질 체험 프로그램이 있다. (064)792-3090

■ 하도마을: 우도를 바라보는 동쪽에 있다. 현역 해녀가 250여명이나 되는 명실상부한 제주의 대표적 어촌. 원담에서 맨손으로 해산물을 채취하는 원담체험과 대나무 줄낚시, 해녀들의 생활을 알 수 있는 불턱체험 등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064)783-1996

■ 구엄마을: 북서쪽의 반농반어 마을. 낚시와 해산물 채취 체험뿐 아니라 돌소금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다. 돌소금은 제주의 천연 지형을 이용해 만든 전통 제염 방식이다. 제주올레 16코스가 지나는 아름다운 풍광 속에 마을이 있다. (064)713-2239

■ 예래마을: 서귀포시 서쪽 17㎞에 위치. 중문 관광단지와 계곡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전국 제1호 반딧불이 보호지역으로 지정될 만큼 자연 환경이 깨끗하다. 보말국을 끓이는 재료인 고매기를 채취해볼 수 있다. 담수해수욕장도 있다. (010)3119-3776

■ 위미1리: 남동부 남원읍에 있다. 감귤 농사 짓는 농촌이면서 동시에 어촌종합 관광센터가 있는 해녀 마을이다. 마을 체험에 참가하면 감귤과 함께 톳, 오분자기 같은 이 마을의 특산품을 함께 싸서 돌아갈 수 있다. (064)764-0303

제주=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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