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전북 군산에 롯데 '세븐일레븐' 편의점을 연 A(39)씨는 4월 황당한 일을 겪었다. A씨가 자리를 비운 사이 본사의 점포 관리직원이 매장을 방문해 매장 내 컴퓨터로 이메일을 주고 받은 사실을 알게 된 것. A씨에 따르면 이메일은 자신의 점포에 대한 감시를 요구하는 내용으로, 본사 신규 점포 담당직원에게 보내졌다. A씨는 본사에 따지려 이메일 화면을 저장해 뒀으나 어느 순간 파일이 감쪽같이 지워져 있었다. 본사에서 원격프로그램으로 점포 컴퓨터를 관리하고 있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황당한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5월 초 A씨는 본사 직원들이 점포 내 폐쇄회로(CC)TV 녹화 화면을 보고 갔다는 얘기를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전해 들었다. A씨가 "왜 마음대로 매장 CCTV를 보느냐"고 따졌지만 "급박한 상황이었다"는 이해할 수 없는 대답뿐이었다.
본사 직원들의 이 같은 행동에 대해 A씨 등 피해 점주들은 본사와 마찰을 빚거나 운영 방침에 부정적인 의견을 표출하는 점주들을 압박하기 위해 개인 사생활을 감시하고 비판 활동을 사찰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A씨는 "세븐일레븐 편의점 점주들이 모여 활동하고 있는 인터넷 카페도 감시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A씨가 카페에 글을 남기자 본사에서 "자극적인 문구들을 빼달라" "글 작성을 자제해달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또 서울에서 점주들 회의나 집회가 있는 날엔 본사 팀장으로부터 어김없이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A씨는 "실명이 아닌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는데도 회사에서 활동 내용을 속속들이 알고 있을 만큼 사생활 침해가 도를 넘어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참다 못한 A씨는 이달 초 롯데 세븐일레븐 대표이사를 불법 사찰 및 인권침해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경제민주화국민운동본부, 롯데재벌횡포피해자모임 등 11개 시민단체는 24일 서울 중구 롯데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롯데가 편의점 점주별로 특이사항 문서를 작성ㆍ관리하는 등 불법 사찰한 것은 물론 온라인 활동까지 감시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며 이를 즉각 시정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이 공개한 자료에는 '천성이 게을러 점포 운영 능력이 떨어지고 매사 귀찮아 함' '평소 자기 주장이 강하며 회사 정책에 매우 부정적임' 등 점포별 점주 특이사항이 정리돼 있었다. 이 자료에는 점주들의 전 직업이나 가족 관계까지 적혀 있었고, 또 다른 자료에는 지역별 문제 점포 현황, 점주들의 안티카페 활동 여부 등도 상세하게 기록돼 있었다.
이에 대해 롯데 관계자는 "점포와 점주의 상황을 확인한 것은 영업사원들이 효율적인 지원을 위해 한 것이지 본사 차원의 감시나 사찰은 아니다"며 "일부 모욕적인 표현을 쓴 것은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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