껄끄러운 한일관계가 반영된 것일까.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26일과 27일(현지시간) 유엔 총회를 계기로 일본, 중국, 미국의 외교장관과 잇따라 만나는데 유독 일본과의 회담 시간이 짧아 눈길을 끌고 있다.
윤 장관은 26일 오후 2시 30분부터 30분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과 양자회담을 갖는다. 이어 27일 오전에는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 오후에는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각각 45분간 회담이 예정돼 있다.
이번처럼 다자회의 기간에 열리는 양자회담 시간은 통상 30분, 45분, 60분 중에서 정해진다. 상대국과의 관계나 전략적 중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다.
따라서 한일 외교장관이 30분간 만나는 것은 회담에 필요한 최소 시간을 할애한 것이다. 통역과 의례적인 인사말을 빼면 양국 장관이 발언할 수 있는 시간은 각각 5분 정도에 불과하다. 깊이 있는 대화보다는 각자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데 그칠 수밖에 없는 시간이다. 일본 정부가 먼저 과거사 문제 등에 성의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인 셈이다.
반면 한중, 한미 외교장관 회담 시간은 공식적으로 45분이 배정돼 있지만 실제로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정부 관계자는 24일 "중국, 미국과의 회담에서는 많은 이슈를 다루다 보니 과거에도 예정된 시간을 초과한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지난 7월 1일 브루나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때도 그랬다. 미국과의 외교장관 회담이 길어지면서 다음 차례인 일본과의 회담은 예정된 30분을 채우지 못했다.
정부가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먼저 하는 것은 일본 정부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한 판단도 깔려있다. 윤 장관은 27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전시 여성 성폭력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우회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거론할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전날 기시다 외무상과의 회담 결과에 따라 발언의 수위가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한일 외교장관 회담 직전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유엔 총회 연설이 예정된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외교 소식통은 "일본측의 카드를 먼저 파악한 뒤에 우리의 입장을 밝히기 위한 수순"이라고 분석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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