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6일(현지시간) 유엔총회에서 전쟁중 성폭력 피해자 문제에 대해 연설할 것으로 알려져 외교적 파장이 일고 있다. 여성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겠다는 것이 연설의 목적이지만 실제로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 연행 사실 부정에 대한 국제적 비난을 덮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23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26일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 일반토론 연설에서 전쟁중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국제기금에 출연하겠다는 계획을 밝힐 예정이다. 일본 정부는 이를 위해 국제형사재판소(ICC)의 피해자 신탁기금 출연금을 마련하기로 하고 내년 예산에 1억엔(11억원)을 반영할 방침이다. 2004년 발족한 ICC 피해자 신탁기금은 한국, 독일, 영국 등이 임의로 자금을 내 운영되고 있으며 4월 기준 1,820만유로(185억여원)이 쌓여있다.
일본 언론은 일본 정부의 위안부 강제 연행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계승하지 않겠다던 아베 총리가 사실상 위안부를 의미하는 전쟁중 성폭력 피해자를 돕겠다고 한 것이 미국에서 최근 잇따라 일본군 위안부 동상이 건립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게다가 "전쟁중 위안부는 필요했다"는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의 망언이 국제적 비난을 일으켜 일본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 아베 총리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2020년 도쿄올림픽을 치르더라도 일본의 이미지를 쉽게 회복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군 위안부 배상 문제에 소극적인 아베 총리가 ICC 피해자 신탁기금을 통한 우회 배상에 나서려 하는 것에 대해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한 외교 관계자는 "위안부 피해자 배상 요구는 외면하면서, 국제사회에 위안부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옳지 않다"며 "지금이라도 위안부 강제연행을 사과하고 배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유엔총회에서 법에 의한 지배를 강조할 예정이지만 이 역시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본 언론은 "아베 총리는 집단적 자위권의 족쇄를 풀려 함으로써 스스로 법치주의를 위협하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국제사회에서 법치주의를 강조한다고 먹혀들 리가 없다"고 비난했다. 아베 총리가 헌법 개정이 아니라 헌법해석 변경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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