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연금 정부안이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보다 크게 후퇴한 내용으로 26일 발표될 예정이다. 공약 후퇴의 책임을 지고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지자 박 대통령이 진 장관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아 공약 파기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박 대통령이 직접 국민에게 입장을 표명하고, 재정이 뒷받침되는 공약 이행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는 지적이다.
23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26일 발표될 정부의 기초연금안은 당초 '65세 이상 모든 노인과 중증장애인에게 월 2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공약에서 후퇴해 '소득 하위 70%까지만 국민연금 가입과 연계해 지급'하는 안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소득하위 70% 노인 중 국민연금 미가입자에게는 20만원을, 가입자에게는 10만~20만원 범위에서 가입기간이 길수록 적게 주는 안으로 알려졌다.
기초연금 도입안은 2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거치면서부터 후퇴를 거듭했다. 인수위는 모든 노인에게 연금을 주되 국민연금의 가입여부ㆍ기간과 연계해 4만~20만원을 지급하는 수정안을 발표했다. 이후 복지부가 구성한 국민행복연금위원회는 소득하위 70~80%에게만 지급하는 안을 7월 권고하면서 보편적 복지에서 선별적 복지로 공약의 기본취지가 바뀌었다. 김상균 행복연금위원회 위원장(서울대 명예교수)은 "대선 공약이 만들어진 당시와 경제상황이 달라졌다"고 발언, 정부가 경제상황을 면죄부 삼아 책임을 회피하려는 여론조성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하지만 사실상의 공약 파기에 대해 진 장관에게만 책임을 미룰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 거세다. 이상은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실 여건에 따라 부분적으로 공약을 수정할 수는 있으나 지금처럼 완전히 말을 뒤집는 것은 공약 파기"라며 "장관만 사퇴하고 넘어가려 한다면 '몸통'을 두고 '깃털'만 희생시키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고 비판했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런 식이라면 가면을 쓰고 선거를 한 셈"이라며 "선거 때마다 이런 사태가 계속되면 정당정치가 발전하지 않고 정치적 허무주의가 깊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약을 수정하더라도 소요 예산과 우선순위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전략을 마련해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이 교수는"대통령은 적정 복지를 하겠다고 공약해 당선된 만큼, 공약을 축소할 수밖에 없다는 해명보다는 공약 이행을 위해 증세를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을 국민에게 설명하고 야당의 협조를 구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노총도 성명을 내 "대통령이 대선 당시 약속한 기초연금 공약이 이행되도록 재정확보 방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26일 내년도 예산안을 상정하는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기초연금과 4대 중증질환 보장성 확대에 대해 언급이 있을 것"이라며 "경제가 어려운 실정상 공약대로 지키기 어렵다는 이해를 구하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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