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이나 논리가 없는, 소통하지 않는, 그리고 결코 합의가 없는 문화로 상징되는 것이 군대 병영문화이다. 물론 위기의 극복, 협동을 통한 문제해결, 건강한 육체와 건전한 정신이라는 장점도 있다. 군대문화가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이 남아있다. 일본제국주의 침략 문화에서 비롯되어 전쟁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겪는 근대화 속에서 효율성의 이름으로 문제점이 은닉, 포장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제 21세기 창의성 존중의 시대에 군대문화의 극복이 시대의 화두가 되었다. 군대문화의 공개를 통해 장점은 살리고 어두운 점은 극복하자는 취지 하에 많은 내용들이 방송과 신문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맥락 하에서 문선유 학생의 글을 살펴본다. 먼저 글의 형식적인 구성이다. 1단락은 현재의 상황 소개다. 2단락은 문제점이 있다고 말한다. 3단락은 첫 번째 문제점으로 순종하는 학생들이 양산됨을 지적한다. 4단락은 두 번째 상술로 학교폭력의 바탕이 된다고 한다. 5단락은 학생들의 재능을 낭비하고 자아성찰능력을 저해하는 세 번째 문제점 상술이다. 6단락은 전체주장으로 개성을 존중하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한다. '상황인식-문제점 언급-핵심주장'의 구성으로 되어있다.
이제 글의 내용적인 측면을 다루어본다. '문제의식-핵심주장'이라는 쌍이 글을 이루는 뼈대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뼈대 위에 개념과 근거라는 근육이 붙는다. 또한 논리라는 피가 더해져서 살아있는 글이 되는 것이다. 물론 부연설명이나 상술 혹은 예시라는 피부가 더해지기도 한다. 획일적인 군대문화라는 상황소개로 시작되어 몇 가지 문제점을 상술한 뒤에, 개성을 존중하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핵심주장을 의문문으로 전환하는 것이 문제제기이다. 문제점의 나열과 문제제기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 가령 특정 자동차에 관한 글을 쓴다고 하자. '현가장치에 문제가 있다', '조향장치에도 문제가 있다', '품질대비 가격이 비싸다'라고 병렬적으로 문제를 나열한 뒤에 '그렇다면 자동차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소비자의 의견을 존중해서 만족도가 높은 좋은 자동차를 만들자'라고 글을 쓴다면 문제의식을 찾을 수 있겠는가? 이와 같다. 어떠한 자동차를 만들 것인가? 자동차 소비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와 같은 구체적인 문제의식을 전제하고 글을 이끌어야 한다.
신문기사에서는 정보전달을 주로 하기에 여러 가지 군대문화의 문제사례를 병렬적으로 나열한 뒤에 화두를 던지는 형태의 글을 쓴다. 하지만 우리의 관심인 좋은 논술글이 되려면 문제의식과 핵심주장이 기초가 되고 핵심주장에 대한 근거를 차례대로 언급하여 설득력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문제점이 세 가지가 있다고 말하고는, 그 세 가지에 대해 상술한 뒤에 곧장 개성존중과 독립인격체로서의 교육을 주장해서는 논리적인 글이 될 수 없다.
직업적인 이유(대학강사이자 논술학원원장)로 매달 천 여 편의 글을 읽고 첨삭하고 수정 가필한다. 대상학생들의 어휘구사나 문장표현 수준을 경험적으로 체득하고 있다. 고교 1학년부터 대학입시를 앞둔 논술 수험생 그리고 로스쿨을 지망하는 대학졸업반까지 다양한 수업군(群)에서 많은 글들을 접하게 된다. 평균적인 고등학교 1학년이 구사하는 어휘에는 예상되는 일정수준이 있다. 그런데 문선유 학생의 글은 이 일정수준을 넘는 탁월한 어휘를 구사한다. 구체적으로 인격함양, 정황, 표명, 배척, 공공연, 계발, 직업만족도가 낮다, 자아성찰능력, 발구름판 등은 쉽게 구사되는 단어들이 아니다. 유년시절부터 매우 많은 독서가 바탕이 되었거나 혹은 최근에 지속적으로 좋은 글쓰기 지도가 후행 되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바람직한 모습이다.
하이퍼 논술학원장ㆍ서강대 법학부 강사
★기고와 첨삭지도를 희망하는 중ㆍ고생은 약 2,000자 분량의 원고를 nie@hk.co.kr로 보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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