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가구를 짜는 장인은'현재까지 남아 있는 옛 가구를 그대로 재현하는 사람'으로 통했다. 그러나 전통가구 대부분이 조선 중기 이후의 것이며 따라서 우리가 보존하고자 애쓰는 전통이 과거 한때의 유행일 수도 있음을 생각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지난달 열린 제38회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차지한 양석중(50)씨의 삼층장은 '오늘날 전통은 왜, 어떻게 보존돼야 하는가'에 대한 사려 깊고 명민한 답변이다.
그가 이번 경합에 내놓은 것은 느티나무로 짠 두 벌짜리 늘씬한 삼층 옷장이다. 본보기로 삼았던 조선시대 삼층장의 서랍이 가로로 3분할 돼 있는 것이 특이해(보통은 짝수 분할) 원래 두 벌인데 한 벌이 사라졌을 것이란 추측 하에 짝을 지어 제작했다. 겉문짝에는 느티나무 속에서 찾아낸 천연의 나비 문양을 배치하고, 속문짝에는 수 놓은 비단을 댔다. 속문짝과 자수 모두 전통 기법에 속하지만 두 개가 합쳐진 형태는 전례가 없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좋은 옷을 수납할 때 딱딱한 나무에 닿는 것보다 부드러운 비단에 닿는 걸 더 선호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최종 심사를 했던 최공호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는 "아주 보수적으로 전통 기법을 고수하면서도 기둥의 너비와 폭, 머름칸의 비례, 재료 선택에 있어서는 현대적 미감을 세심하게 배려했다"며 "이 정도면 조선시대에도 충분히 있을 법한 디자인적 변화"라고 평했다.
양씨는 경력 13년차에 접어드는 늦깎이 목수다. 전통 가구 장인 대부분이 어릴 때부터 가업을 이어받아 30~40년의 경력을 가진 것에 비하면 연차가 짧다. 서울대 운동권 출신인 그는 대우자동차 생산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2001년 돌연 목수로 직업을 바꿨다. 중요무형문화재 소목 보유자인 박명배 명인의 제자로 지난 6월 이수자가 됐다.
"전통가구를 만들 때 흔히 법고창신이란 말을 합니다. 옛 것을 지키되 새 것을 창조하라는 말은 언뜻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죠. 저는 옛 기법에 충실하되 거기에 새로운 것 하나쯤은 기여해야 한다는 말로 이해했습니다."
양씨는 조선시대 가구 기름으로 널리 쓰였을 거라 추정되는 동유(유동나무 열매를 짠 기름)를 재현하기 위해 2009년부터 전국을 들쑤시고 있다. 남쪽 해안가 유동나무 서식지에서 열매를 따와 경동시장에서 기름을 짜는 것으로 시작해 엄동 설한에 끓는 기름을 휘젓는 기행까지 벌인 결과 이제 80% 가량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고 한다. "동유의 비밀이 밝혀지면 전통 가구 제작의 큰 줄기인 유칠(기름칠)의 베일이 벗겨지는 셈"이라고 한다.
전통가구 장인의 소임이 '전통의 답습이냐 전승이냐'를 놓고, 한때 공예대전에서는 디자인과 제작을 따로 심사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적이 있다. "지금 이 순간도 전통을 이루는 한 지점이다"는 양석중 장인의 말은 이 같은 혼선에 마침표를 찍기에 부족하지 않다.
대통령상을 받은 삼층장을 포함해 이번 공예대전 수상작 280점은 국립민속박물관에서 10월 8일부터 28일까지 전시된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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