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이 미혼모에게 아이의 아버지를 밝히라며 그 지인과 친인척들을 들쑤시는 사생활 침해를 어느 정도까지 인정해야 할까. 그 아이가 현직 검찰총장의 '혼외 아들'일 가능성이 있다면 인권 침해 행위가 벌어져도 용인해야 할까.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 아들'의혹에 대해 지난 13일 사상 초유의 감찰 지시를 내린 후 일주일이 넘었지만, 법무부의 진상조사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논란만 일으키고 있다. 애당초 감찰로 진실을 밝히기 어려웠고, 징계할 위법 사항도 아니어서 감찰 무용론(無用論)이 검찰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22일 법무부에 따르면 법무부 감찰관실은 추석 연휴에도 채 총장의 내연녀로 지목된 임모씨의 이모 등 친지들을 직접 찾아가 묻고 자료를 수집했다. 그러나 탐문의 수확은 "채 총장 아들이라고 들었다"는 전언(傳言) 수준이다. 이미 임씨는 언론에 보낸 편지에서 "아이는 채 총장의 아들이 아니다"며 "알고 지내던 채 총장을 존경해서 아버지 이름으로 가져다 썼고, 가족들에게도 채 총장 아이라고 거짓말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법무부는 이 같은 주장을 뒤엎을 만한 결정적 증거를 찾지 못했으며, 현재까지 임씨의 소재도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주변인들에게 질문을 하는 정도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답변을 강요한다든가 불확실한 정황만 갖고 확인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사생활 등 기본권을 침해하게 될 소지가 높다"고 말했다.
문제는 법무부가 사생활 침해 논란을 무릅쓰고 조사를 강행해도 '혼외 아들' 여부를 밝힐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다. 유전자(DNA)검사를 통한 친자 확인에는 본인의 동의가 필수적인데 임씨와 그의 아들이 자발적으로 이에 동의할 가능성은 낮은 상황이다.
사의를 표명한 채 총장에게도 감찰을 강제할 수단이 없다. 채 총장은 '혼외 아들' 의혹을 보도한 조선일보를 상대로 이번 주 중 정정보도 청구소송을 제기해 법정에서 진위를 가린다는 입장이다.
공무원에 대한 감찰은 비위사실을 인정할 만한 이유가 있을 때 착수하는데, '혼외 아들'이 사실이라 해도 이를 비위사실로 볼 수 없다는 점도 법무부 감찰의 문제점으로 꼽힌다. 채 총장과 임씨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 계좌나 통화내역 추적을 하려면 채 총장의 동의서를 받거나,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 받아야 한다. 채 총장은 감찰 불응을 분명히 했고, 법원에 영장을 청구할 근거도 없다. 민간인인 임씨에 대한 강제 조사는 더욱 월권이다.
법무부는 현재 상태가 본격 감찰 전 진상조사 단계라고 밝혀왔는데, 이런 한계들 탓에 정식 감찰로 전환할지 여부도 아직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공무원이 감찰에 불응할 경우 혐의사실이 있다면 체포영장을 발부 받아 수사를 할 수 있지만 혼외 아들 논란은 수사 전환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감찰을 통해 밝힐 수 있는 게 거의 없어 보이는 데 이런 감찰을 왜 한다는 것인지 냉소적인 시각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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