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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9월 23일] 내비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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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9월 23일] 내비게이션

입력
2013.09.22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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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가 시작된 18일 급한 볼일로 지방에 다녀왔다. 교통방송이나 인터넷, 스마트폰 앱은 모두 아침 일찍부터 고속도로가 앓는 몸살을 전했다. 국도를 이용하기로 작정하고 내비게이션에서 '일반도로'를 선택해 일러주는 대로 따라갔다. 예상은 들어맞았다. 일부 병목 구간 빼고는 평소 신호대기 수준의 정체가 고작이었다. 도는 길이고 제한속도가 낮아 시간단축은 20% 정도였지만, 운전 중의 편안한 마음가짐은 고속도로의 짜증과는 거리가 멀었다.

▲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와 막 피기 시작한 억새 꽃, 누런 물이 든 논이 빚어내는 초가을의 정취가 좋았다. 또 언제든 길 옆으로 차를 빼어 쉬며 담배와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기쁨도 컸다. 문제는 돌아오는 길이었다. 하행선에 비하면 양반이었지만 상행선 또한 곳곳에서 정체를 빚고 있었다. 다시 '일반도로'를 택해 돌아오다가 막다른 길에 들어섰다. 길은 있는데 보수공사를 하느라 막아둔 상태였다. 차를 돌려 나오다 사고까지 내서 한참 '미스 김'을 원망했다.

▲ 어디 내비게이션 탓일까. 실시간 교통정보까지 받아 가장 빠른 길을 알려주는 최신형과 달리 나이 든 '미스 김'은 주인 하기 나름이다. 자주 지도를 고쳐줘야 할 주인이 게으르면 '미스 김'은 나날이 멍청해진다. 최근 명절이나 휴일에 부쩍 고속도로 정체가 심해졌다. 올림픽대로를 비롯한 서울의 주요 간선도로도 비슷하다. 내비게이션을 탓하는 사람들이 많고, 실제로 그냥 목적지만 택하고 내버려둘 때의 '추천경로'는 고속도로나 간선도로가 중심이다.

▲ 전철이 주된 대중교통 수단이 되면서 길눈이 어두워진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운전을 하게 되면 내비게이션에 기대게 되고, 그런 습관이 몸에 배면 뇌에 담기는 교통지도의 정보량은 늘어나질 않는다. 휴대폰 생활 20년에 수백 명에 이르던 머릿속 전화번호부가 거의 비어버린 것과 같은 이치다. 평소에는 문명의 이기에 기대도 괜찮지만 막상 휴대폰을 잃어버리거나 내비게이션이 고장이 났을 때도 생각해 봐야 한다. 주요 간선도로, 가까운 사람들의 전화번호 몇이라도 기억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게으름은 디지털 시대에도 인간의 으뜸 죄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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