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11일 만에 관객 630만… 추석연휴 극장가 흥행 왕좌에'광해'비해 실제작비 덜 들고 캐스팅은 풍성한 '저예산사극'"권력 다툼 계유정난 눈 끌지만 정작 다루고 싶었던 것은 관상쟁이 내경의 인생 이야기"송강호 등 열연으로 깊은 인상
파죽지세다. 개봉 11일만에 634만7,175명(21일 기준,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이 찾았다. 6일 먼저 개봉한 추석 라이벌 '스파이'(5일 개봉, 266만7,684명)는 멀찌감치 따돌렸다. 22일까지 누적 관객 수는 700만 가량으로 추정된다. '관상'의 보기 드문 흥행 속도는 지난 여름 '설국열차'의 질주를 떠올리게 한다. 1,000만 관객도 가능하다는 조심스러운 예측이 충무로에서 나온다.
추석연휴 극장가 흥행 왕좌에 오른 '관상'의 한재림 감독을 지난 16일 오후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예상 밖의 흥행 속도에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그는 "영화에 참여한 사람들이 풍성한 추석을 보낼 수 있어 기분 좋다"고 말했다.
'관상'은 조선조 계유정난이란 역사적 급류에 휘말린 천하제일 관상쟁이 김내경(송강호)과 그의 가족이 겪는 비극을 전한다. 웃음으로 시작해 한탄과 눈물로 끝을 맺는 이 영화는 배우들의 고른 연기와 묵직한 이야기 진행이 매력적이란 평을 받는다. 관상과 계유정난이라는 호기심 어린 소재도 큰 흥미거리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어린 조카를 제거하고 왕이 되려는 수양대군(이정재)을 이리에, 그에 맞서는 김종서(백윤식)를 호랑이에 빗대어 흥미를 돋운다. 하지만 한 감독은 "관상과 계유정난이 관객들의 호기심을 끌긴 하지만 정작 내가 다루려 한 것은 내경의 인생 이야기"라고 말했다. "영화 속 당대 최대의 승자는 한명회이지만 그는 언제 목이 잘릴 지 몰라 두려워하고 결국 부관참시를 당합니다. 운명을 거슬러 김종서를 따랐던 내경이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선 결국 승리한 인생 아니냐를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관상'은 마케팅비용 등을 포함해 104억원이 들어간 대작이지만 한 감독은 "저예산사극"이라고 말했다. "'광해, 왕이 된 남자' 등과 비교하면 실제 제작비가 더 적은데도 유명 배우들이 더 많이 출연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세트를 짓고 촬영한 영화가 아니라 전국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며 찍었다"고 말했다.
한 감독은 '연애의 목적'(2005)과 '우아한 세계'(2007)로 충무로의 주목을 받아왔다. 두 영화는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 못했으나 "삶의 페이소스를 잘 끄집어냈다"(김영진 명지대 영화뮤지컬학부 교수)는 평가 등이 따른다. 말랑말랑한 로맨틱코미디 정도로 인식됐던 '연애의 목적'은 연애의 눅눅한 본질을 포착했고, 누아르의 외피를 두른 '우아한 세계'는 무기력한 우리 시대 아버지들의 슬픈 자화상을 비췄다. 관객들의 기대와 달리 장르의 법칙을 비틀어 극적 재미를 빚어내는 게 한 감독의 장기다. 제작자가 다루기 쉽지 않은, 고집 센 감독이라는 부정적인 소문도 충무로에 떠돈다. 한 감독은 "나에 대한 오해가 많다. '우아한 세계'를 찍을 당시 송강호 선배랑 주먹다짐했다는 헛소문까지 떠돌았다"며 해명했다.
'관상'은 송강호 백윤식 김혜수 이정재 조정석 이종석 등으로 이뤄진 출연진만으로도 촬영 전부터 화제를 뿌렸다. 지명도에 비해 출연 분량이 적은 김혜수의 기생 연홍 역할도 호사가들의 입에 올랐다. 한 감독은 "송강호란 배우를 쥐락펴락해야 할 배역인데 김혜수 선배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며 "캐스팅이 완벽해 보이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자평했다.
삶의 희로애락을 스크린에 빚어내는 송강호의 연기는 이 영화의 백미. '관상' 제작진은 '설국열차' 출연 때문에 바쁜 송강호를 7개월이나 기다렸다가 촬영에 들어갔다. 한 감독은 "내가 의도한대로 김내경을 통해 희비극을 다 표현해낼 수 있는 연기자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관상'을 본 어느 감독님이 그러시더군요. '송강호를 인간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고요. 저도 그 말에 공감합니다."(웃음)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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