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경쟁자였다가 지난해 새 지도부 결정 과정에서 돌연 낙마하며 문화대혁명 이후 최대의 정치적 파장을 불러 온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서기가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중국 지난(濟南)시 중급인민법원은 22일 뇌물수수, 공금횡령,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보 전 서기에게 무기징역과 함께 정치권리 종신 박탈, 개인재산 몰수를 선고했다.
법원은 보 전 서기가 1999~2012년 다롄(大連)시 서기 등을 지내면서 쉬밍(徐明) 다롄스더(實德)그룹 회장 등으로부터 2,044만위안(약 36억원)의 뇌물을 받고 공금 500만위안(약 9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법원은 또 보 전 서기가 2011년 11월 부인 구카이라이(谷開來)의 영국인 독살 사실을 알고도 법 대로 처리하는 대신 도리어 이를 보고한 왕리쥔(王立軍) 전 충칭시 공안국장을 면직시킨 것을 직권 남용이라고 판시했다. 법원은 특히 왕 전 국장의 면직을 그가 2012년 2월 청두(成都)의 미국 총영사관으로 도주한 주요 원인으로 꼽으면서 사회에 악영향을 주고 국가와 인민의 이익에 큰 손해를 입혔다고 강조했다. 판결문이 낭독된 뒤 본 전 서기는 수갑이 채워진 채 법정 밖으로 끌려 갔는데 이 장면은 중국 전역에 방송됐다.
반역ㆍ도주죄를 저지른 왕 전 국장(징역 15년형)보다 더 큰 중형이 보 전 서기에게 선고된 것은 법원이 공산당의 지도 아래 있다는 점에서 지도부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새 지도부가 이 사건을 부패 척결과 사법 정의 실현의 사례로 삼고 싶어 한다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실제로 법원은 선고 하루 전 공식 웨이보(微博ㆍ중국판 트위터)에 '정의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실현돼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이 격언은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1984년 옮겨 펴낸 알프레드 데닝의 에 나오는 말이다. 시 주석도 부패 관료를 뜻하는 '호랑이'와 '파리'를 한꺼번에 때려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보 전 서기가 재판 과정에서 검찰 주장을 반박하며 무죄를 주장, 지도부를 당혹스럽게 한 것도 중형 선고의 배경으로 꼽힌다. 무기징역 외에 '정치권리 종신 박탈'이란 괴이한 선고가 내려진 것이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준다. 감형을 바라고 죄를 인정하기 보다 괘씸죄를 무릅쓰고 무죄를 항변함으로써 정치적으로 영원히 살 길을 도모한 보 전 서기에게 다시는 재기할 수 없게 쐐기를 박은 것이란 해석이다.
보 전 서기가 선고를 순순히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무죄를 주장해 온 만큼 상소를 통해 정치적 희생양이란 인식을 다시 심으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네티즌은 "수입과 분배의 불균형 문제 및 고질적 부패가 해소되지 않는 한 균부론(均富論)을 외친 보시라이 같은 '영웅'은 다시 등장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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