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구효서(56)씨의 여덟 번째 소설집 (문학동네 발행)에는 모두 여덟 편의 단편소설이 실렸다. 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이들이 작가는 또 아니다. 말 못하는 장애를 가진 '나'는 타자기든 휴대폰 문자작성기든 당대의 도구를 이용해 평생 "모든 말을 두드렸"고, 중년에 이르자 남몰래 컴퓨터에 저장해둔 한글문서파일이 6,430개나 된다.('6431-워딩.hwp') 공부는 잘했지만 말이 어눌했던, 지금은 중년의 전업주부가 된 또 다른 '나' 역시 어린 시절 쓰던 일기장과 잡기장부터 시작해 지금은 1,000쪽이 넘는 문서를 비밀번호와 함께 컴퓨터 속에 숨겨놓았다. "버릇이다, 일종의. 글 쓰는 것. 이유나 목적은 없다. 중얼거리는 것이다. … 소용없고 쓸데없는 것들의 무덤. 지금까지 살아오며 내뱉은 푸념과 허텅지거리, 시샘과 원망의 썩은 물웅덩이였다." ('모란꽃')
아마도 이 작가에게 글쓰기란 절대적 아름다움을 주조하기 위한 예술적 방편도, 현실세계의 전망을 구축하기 위한 서사적 해법도 아닌 것 같다. 그는 등단 후 26년간 90여 편의 작품을 쓴, 성실한 직업작가의 대표적 사례로 언급될 만하지만, 그에게 글쓰기란 장삼이사들의 것들과 근본적으로는 차이가 없다. 그가 작가든 아니든, 글쓰기란 "말의 궤적"이며, 그 궤적은 "지나온 자국으로서의 궤적이 아니라, 내 삶이 나아가고자 했던 이정표로서의 궤적"('6431-워딩.hwp')이다. 생의 균열을 탐지하는 가장 예리한 탐침으로써, 글 쓰기는 누구에게나 절실하다.
표제작 '별명의 달인'은 중학시절, 친구들의 본질을 예리하게 꿰뚫어 한두 마디의 별명으로 표현해내던 '라즈니시'라는 동창의 이야기를 그린다. 아내의 돌연한 결별 선언이라는 거대한 생의 균열 앞에서 도무지 영문을 알 길 없는 월간지 수석 데스크 '머이'는 취재를 핑계로 연락을 끊고 잠적해 지내는 라즈니시를 찾아간다. '나'의 문제를 진단해달라는 게 당초의 의도였으나, 라즈니시와의 만남에서 머이가 깨닫게 되는 것은 자신의 이해방식으로 타인이 규정되지 않는 것을 견뎌내지 못하는 라즈니시의 불안과 공포였다. 온전한 이해를 추구한다는 것은 결국 오해를 은폐하고 억압하는 폭력 아닌가, 이 작품은 묻고 있다.
대학시절부터 십 수 년간 연애감정의 언저리를 맴돌고 있는 두 남녀의 아련한 어긋남을 그린 '화양연화'는 아마 이 소설집을 덮고도 오래도록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섬진강변으로 시집 가 애까지 둔 대학후배 송주를 만나고 싶어 매화를 핑계로 구례에 내려간 '나'는 또 한번 서로가 서로를 연모하는 것 같은 긴장된 착각의 감정 속으로 깊이 빠져든다.
헤어지려는 찰나, 송주가 "왜 한번도 답장을 안 했어요?" 물으면서 이 잔잔한 서사에는 꽃비가 폭우처럼 쏟아진다. 이제는 쓰지 않는 천리안 메일 계정으로 지난 세월 송주는 마흔여섯 통의 메일을 보냈다. 비밀번호조차 떠오르지 않는 메일함에는 뒤늦게 당도한 연서들이 빼곡하지만, '나'는 제목만 오래도록 들여다보다가 결국 읽지도 않은 채 삭제해 버린다. 송주에게 전화를 건 '나'는 "메일 안 왔던데?" 짐짓 태연한 척 묻는다. 깔깔거리던 송주. 그녀의 대답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송주의 대답을 들으며 "넌 정말 나와 너무 똑같아서 슬프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강렬한 연애감정도 삶이라는 전체집합에서 보자면, 한낱 부분집합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라고 이제는 나이든 이 작가는 말하고 싶었나 보다. 어쩌면 삶의 본질적 서사는 일어난 일들이 아니라 일어나지 않은 일들 속에서 이뤄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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