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임영웅씨 '고도를 기다리며' 아들 임수현씨가 예술감독 맡아 10월8일부터 새 무대 올려어머니 오증자씨, 딸 임수진씨는 극장 운영 맡으며 번역·출판 가족 모두가 '고도' 전문가"중학동 시절 한국일보 강당서 1969년 초연된 연극 모두의 기억에 남아 있죠"
"이 지랄은 이제 더는 못 하겠다." 모든 것이 거덜난 두 사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말마따나 "목이나 매는"(블라디미르) 것일지도 모른다. 단행본으로까지 출판됐을 만큼 미려한 오증자씨의 역문은 이 대목에서 위악적이기까지 하다(2000년 민음사 발행, 세계문학전집 제 43권 '고도를 기다리며'ㆍ사뮈엘 베케트ㆍ158쪽). 그러나 바로 앞, "내일"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
언젠가는 '고도'(Godot)라는 사내가 나타나, 가뭇없는 시간을 견뎌내 온 두 필부를 구원할 것이라고 오씨의 남편이자 연출가 임영웅씨 역시 굳게 믿는다. 초연 이래 그는 어떻게 해서라도 종말을 유예시켜 객석이 희망의 전언을 읽어내도록 무대 구석구석 세심히 구축해 왔다. 곧 쓰러질 것만 같은 이들 두 사내에게 그가 마지막으로 내려 쬐는 한 줄기 희끄무레한 빛은 새벽의 여명처럼 객석에 분명 어떤 위안이다. 예를 들어, 이 무대를 보기 위해 1988년 서울국제연극제를 참관했던 부조리 극의 세계적 석학 마틴 에슬린은 "어릿광대로 치밀하게 계산된 배우들의 무용적 몸짓이 인상적"이라 평했다. 똑 같은 '고도'이지만 잔혹하며 난폭한 이미지로 귀결되기 십상인 여타 서양 무대와 그은 선이다.
그 '고도'가 다시 온다. 지금 소극장 산울림은 개관 28주년 기념 작으로 선택된 이 작품에 대한 기대로 충만하다. 지난 해 같은 곳에서 공연됐던 이 무대의 새 버전이라고 치부해 둘 수도 있다. 그러나 '고도'를 보고 또 본 사람들은 안다. 지난해 앙상블에서 블라디미르를 담당했던 한명구가 빠지고 그 자리를 지난 해 포조역의 이호성이 맡게 되면서 무대는 단순한 역할 바꾸기의 차원이 아닌, 다른 질감의 '고도'를 목도하게 된다는 것을.
다시 예를 들자. 기자는 1999년 도쿄 스기나미(衫並)홀에서 또 다른 '고도'와 만났다. 극단 산울림의 수많은 무대 중 하나였지만 당시 마이니치 신문은 1면 칼럼에서 "이렇게 재미 있는 무대는 본 적이 없다"며 타성에 젖은 감각을 퍼뜩 깨워 주었다. "한국 극단의 손에 걸리니까 기다림 자체가 즐거워진다"고까지 했다.
10월 8일부터 11월 24일까지 펼쳐질 새 무대에 대한 예감 역시 그러하다. 한가위를 코앞에 둔 어느 날, 아직은 한가한 무대로 숨은 주역 네 사람을 불러낸 것은 그래서다.
그들은 하나의 생명 유기체다. 각자 너무 바빠 이렇게 한 데 모일 때라곤 일년에 고작 몇 번이다. 바로 이번처럼 명절 때나 가능한 일이기에 앞서 산울림이라는 키워드 앞에서 일사불란하게 모였다.
한국에서 연극한다는 것은 차라리 전쟁이라는 명제는 다수의 연극인들이 동의하는 바다. 열악한 환경에서 연극하는 사람들 모두 다 안다. 그들에게 극단이라는 결집체는 하나의 참호다. 특별히 설치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극장까지 내려온 임영웅씨는 이 날 극장에서 벌어진 수다가 꽤나 즐거운 모양이었다. 언제고 꺼내 다시 재생해도 새 맛이 우러나오는 '고도'의 대사처럼.
평소에는 객석과 직접 마주칠 일이라고는 없는, 어느 극단의 말투를 빌면 '뒷광대' 중 VIP들이다. 타인들도 함께 오랜 세월 동고동락하면 안팎으로 닮아간다지만 이들은 너무 닮았다. 임영웅(79ㆍ상임 연출), 오증자(76ㆍ극장 대표), 임수진(50ㆍ극장장), 임수현(49ㆍ예술 감독, 서울여대 불문과 교수). 한 식구 넷이 동지다. '고도'의 안팎을 드나들며 이들은 무엇을 꿈꿔 왔을까.
"세계 연극사적으로도 가족 전부가 동지라는 경우는 들어본 적 없어. 부부는 더러 있지만." 임영웅씨가 운을 뗀다. 그래 놓고 보니 뭔가 싱겁다고 생각했는지 "인건비 줄이기 위해 같이 하는 것 아닌가"라며 한마디 툭 던진다. 일시에 웃음보가 터졌다.
이들에게 '고도'는 말하자면 공동체 의식의 출발점이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 그들은 우리 연극사에서 "1969년 '고도를 기다리며'가 한국 초연된 곳"이라 기록되는 중학동 시절 한국일보 강당의 기억을 모두가 갖고 있다.
당시 수진씨는 6살. "한국일보 강당에서 공연 할 때마다 따라다녔죠."한편 수현씨는 어딘지도 모르고 따라다녔다고 했다. 그러나 "고도가 안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기억했다. 어린 나이지만 직관했을까. 지난 8월 그는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베케트에 대하여 '를 출판, '고도'에 다가서는 인식의 통로를 넓혔다. 그는 "실패의 과정 자체를 글쓰기의 대상으로 삼은 베케트는 최악으로 향하는 인간들의 역설적 모습을 그렸다"며 "그것은 그러나 존재의 부정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용기'로 귀결되는 여정"이라고 썼다. 연민의 정 혹은 사랑으로 '고도'를 재탄생 시킨 아버지의 관점과 묘하게 일치된다.
수진씨가 극단과 맺고 있는 관계는 훨씬 실제적이다. 공부하는 남편을 따라 미국에 있다 2년 전 귀국한, 아들과 딸을 하나씩 둔 주부이기 앞서 극장장이기 때문이다. 극장 운영의 대소사를 총괄한다. 올해는 일이 늘어 기획ㆍ관객 동원 등의 업무에다 방송ㆍ포스터 관리 등 홍보 작업의 일선에 나서고 있다. "우리 극장이 페미니즘 연극을 주로 하는 곳이라는 이미지도 깰 겸, 전문인들을 타깃으로 잡아 (홍보) 작업을 해 나갈 거예요."
'고도'와 직접 연관을 맺은 전문가로 자라난 자식들과 모처럼 함께 한 자리. 망(望)팔순의 거장은 보일 듯 말 듯 엷은 미소를 짓는다. 바로 옆에 앉은 대표 오증자씨의 표정이 어느 때보다 화사하다. 모처럼 한 자리에 모인 가족들이 자아내는 분위기가 수현씨는 즐겁다. 옛 생각이 절로 나는 모양이다. "어렸을 때 한국일보에서 본 연극의 잔영이 항상 남아 있었죠. 베케트는 시류에 휘둘리지 않는, 20세기의 고전이거든요."베케트 전공자의 자기 변이다. 다음과 같은 그의 말에는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따낸 자의 학자적 염결성(廉潔性)이 분명 개입돼 있다. "서양의 다른 '고도'도 많지만 산울림의 '고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랄까요."
지난해 한동안 노환을 앓고 난 임씨의 얼굴빛은 전보다 더 말쑥해 보인다. 그는"억지로 (나를) 도우라는 말은 안 했지만 (자식들이)연극의 정서는 배운 듯 하다"고 말했다. 자신은 이제 일선에서 물러나도 되겠지 않겠느냐는 말도 에둘러 표현한다. 수현씨는 "오랜 유학 생활 탓에 내게는 아카데믹한 한계가 있다"며 몸을 낮춘다. 그러나 그는 어엿한 계승자다.
지난해 10월 프랑스의 신진 극작가 에마뉘엘 에스파리유의 '연기 속의 그녀'를 아버지의 극장에서 연출, 변신을 과시했던 수현씨다. 2005년 이 극장에서 베르나르-마리 콜테스의 난해한 작품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을 상연할 당시 유려한 번역으로 관심을 끌었던 그의 행보는 결국 아버지의 그것과 포개진다. 제자들의 교내 무대가 있을 때면 빼먹지 않은 연출 작업이 드디어 빛을 본 것이다."(나는) 오랜 유학 생활 등으로 아직 아카데믹한 단계를 벗어나지 못 하니 아버님한테서 많이 배워야 한다"고 하는 그의 말은 아무래도 과공(過恭) 같다.
자신과 가장 잘 맞는 무대는 프랑스 현대 연극이라고 그는 스스로를 파악한다. 실제로 야스미나 레자의 '대학살의 신' 등 참신한 시각의 프랑스 현대 희곡들을 번역, 한국 초연에 결정적 공을 세웠다. 이제, 임수현발(發) '산울림표 현대 프랑스극'의 진미를 맛볼 차례다. '고도를 기다리며'와 일련의 페미니즘 연극 등 아버지가 빚어 올린 성과를 잇는 새로운 미학이 지금 움트고 있다.
지난해 가을, 임영웅씨는 자식들에게 선언했다. "건강이 예전 같지 않으니 (나는) 내 작품만 하겠다"고. 작품이란 물론 '고도'다. 그것도 해마다 캐스팅을 바꿔가며 올리겠다는 다짐이다."스스로 알아서들 하겠다니 자연스레 인계된 거지요.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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