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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9월 23일] 독재자를 위한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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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9월 23일] 독재자를 위한 지휘자

입력
2013.09.22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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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23일 갈라 시즌 개막 공연으로 올리는 차이코프스키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은 올 여름 내내 논란의 한복판에 있었다. 이 무대를 러시아의 핍박 받는 동성애자들에게 헌정하라는 온라인 청원 운동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6월 미성년자에게 '비전통적 성관계'(동성애) 선전을 금지하는 반(反)동성애법에 서명한 뒤로 일어난 비판 여론이 오페라 무대까지 미친 것이다. 청원 운동은 차이코프스키도 동성애자였음을 환기시키면서 지지를 호소했고 약 9,000명이 서명했지만,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수용하지 않았다. 동성애자 인권을 지지하지만 정치에 개입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러시아 출신 세계적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가 10년 만에 메트 무대에서 다시 만난다 해서 진작부터 화제가 된 이 공연은, 두 사람이 푸틴 지지자라는 사실 때문에 더 말이 많았다. 푸틴은 게르기예프의 최대 후원자다. 게르기예프는 올해 노동절에 푸틴이 부활시킨 구소련 시대 '노동 영웅' 칭호를 받기도 했다.

게르기예프가 또 구설에 올랐다. 영국의 저명한 음악평론가 노먼 리브레히트가 18일 자신의 칼럼에서 그를 '독재자를 위한 지휘자'라고 불렀다. 게르기예프가 내달 21일 카자흐스탄 수도 아스타나에 들어선 유라시아 최대 오페라극장의 개막 공연 지휘를 맡은 것을 두고, 내달 7일 베를린에서 푸틴 정권의 인권 탄압에 항의하는 콘서트를 여는 구소련 라트비아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와 대비시키며 쓴 말이다. 아스타나의 이 화려한 오페라극장은 세계 최장기 독재자 중 한 명인 카자흐스탄 대통령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가 건립한 것이다. 1990년부터 24년째 집권하고 있는 그는 인권 유린으로 악명이 높다. 2011년에는 손자의 결혼식에 비욘세 등 최고의 스타들을 불러 초호화판 축하 공연을 하기도 했다. 당시 스팅은 카자흐스탄의 노동자 탄압에 항의하며 초대를 거절한 반면, 거리에서 반독재 시위가 한창인 가운데 그 자리에서 노래를 부른 비욘세는 비난을 샀다.

기돈 크레머가 추진하는 내달 7일 베를린 콘서트는 2006년 그 날 모스크바에서 피살된 러시아 언론인 안나 폴리트코브스카야를 추모하는 공연으로 준비됐다. 마르타 아르헤리치, 다니엘 바렌보임 등 최고의 예술가들이 동참할 것으로 알려졌다. 크레머 자신은 현재 러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언론 탄압과 인권 유린의 희생자들을 위한 연주회지 반(反) 푸틴 시위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음악가들에게 써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음악가는 음악을 통해 하모니를 추구하는 존재로서, 세상의 고통에 무관심할 수 없다"며 동참을 호소했다.

게르기예프, 크레머, 네트렙코. 모두 최고의 예술가들이다. 이들이 다분히 정치적인 논란의 주인공이 된 것은 예술과 예술가, 정치의 오랜 길항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예술가도 사회적 존재인 이상, 예술도 정치적 진공 혹은 무균실에서 마냥 편안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한국도 다를 바 없다. 히틀러의 독일에서 나치에 부역한 음악가들이 규탄을 받는 것처럼, 일제 강점기 몇몇 예술가들의 친일 행적은 그들이 이룩한 예술적 성취에 지울 수 없는 오점으로 남아 있다.

최근 작곡가 류재준이 홍난파를 기리는 난파음악상 수상을 거부해 화제가 됐다. 그는 난파의 음악적 업적은 인정하지만, 친일 행적이라는 과오가 너무 크고 역대 수상자 중 납득하기 힘든 인사가 포함돼 있어 수상을 거부한다고 했다. 일부에서는 음악을 정치적 쟁점화하는 온당치 못한 행동이라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의미 있는 이의 제기라고 본다. 수상 거부는 개인적 결단이고, 그 자체로 존중할 일이다. 류씨는 영웅이 아니다. 다들 대수롭지 않게 여겼거나 애써 모른 척했던 문제를 환기시켰을 뿐이다. 이를 두고 음악(상)의 정치적 오염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적으로 불온해 보인다. 누구도 역사적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새삼 역사의 두려움을 생각한다.

오미환 문화부장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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