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왕성이 사라진다고 해도/ 명왕성의 궤도가 혼자 남지 않게/ 명왕성의 이름이 없어져도/ 명왕성이 쓸쓸하지 않게."
이런 구절이 들어간 시를 쓴 적 있다. 2006년 겨울이었다. 그해 여름 명왕성은 행성의 지위를 박탈당했다. 질량이 충분치 않고 공전궤도가 일정치 못하다나 어떻다나. 명왕성은 이름도 잃었다. 대신 '소행성 134340'이라는 번호가 붙었다. 어쩐지 수인번호 같았다. 인간들이 뭐라 찧고 까불건 명왕성이야 그저 돌던 궤도를 돌 따름이겠지만, 나로서는 좀 그랬다. 설령 주먹만한 돌멩이라 해도 이름이란 그렇게 함부로 줬다 뺏었다 해서는 안 되는 거 아닌가. 그 마음이 저 구절을 쓰게 만들었던 것 같다.
알고 보니 명왕성에 대해 애틋함을 품은 건 나만이 아니었다. 많은 시인들이 명왕성을 위한 시를 썼다. 명왕성을 특별히 담은 책도 나왔고 「명왕성」이라는 제목의 영화도 나왔다. 행성계에서 퇴출당하면서 오히려 마음을 끄는 인력만은 부쩍 강해졌달까. 공식적인 지위와 이름을 빼앗겼지만, 명왕성은 여전히 명왕성으로서 태양계의 일원이었을 시절보다 한층 더 우리의 마음을 건드린다. 명왕성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세계의 밝은 중심으로부터 밀려난 것, 외면된 것, 억압된 것들도, 어딘가에는 그 쓸쓸한 아름다움이 고이 간직되어 있을 것이다. 바로 그런 아름다움을 가리키는 말로서 '명왕성스럽다' 같은 조어가 쓰이면 좋겠다는 바람이 문득 스쳐간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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