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공덕역 인근 경의선 폐선 부지. 기차가 2005년 지하로 숨어들면서 8년 동안 방치돼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했던 이 공터가 최근 다시 북적이기 시작했다. 청년들이 직접 기획하고 운영하는 상설시장 '늘장'이 이달 초 새로 문을 연 것이다. 늘장은 '늘 열린 장터이고 싶다'는 발랄한 모토가 반영된 이름이다.
이 곳에 생명을 불어넣은 주인공은 이정주(26)씨 등 5명의 청년들이다. 서울시에서 지원을 받는 청년혁신가로 활동 중이기도 한 이들은 연초부터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채 흉물로 방치된 폐선 부지에 관심을 갖고 아이디어를 모았다. 이씨는 "서울 시내에 남아 있는 경의선 폐선 부지가 하나같이 공원으로 변하는 걸 보고 갈증을 느꼈다"면서 "지역 주민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고민하다 사회적 기업에 종사하는 젊은 예술가와 활동가들이 상주하면서 재능과 물품을 교환할 수 있는 상설 장터를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7월 이 곳을 위탁관리하고 있는 마포구청으로부터 3,200㎡의 땅을 무료로 빌려 사회적 기업과 개인, 활동가 등 20여 팀과 함께 생명과 문화를 테마로 한 시장을 꾸렸다. 당연히 이익보다는 참여와 나눔, 공생이 있는 사회적 경제 기반의 장터다. 이 곳 점주들은 전원 협동조합원들이며 이익의 일부는 기부할 예정이다.
우선 길이 90m의 길 양쪽으로 들어선 컨테이너 7개와 20여 개의 부스는 아기자기하면서도 무슨 가게인지 딱 봐도 알 수 있게 만들어졌다. 예컨대 농산물 직거래 상점은 배추, 당근 등이 그려져 있다. 간판도 '산골처녀 유라'(유기농 식품점) '신아람'(수공예 장신구점)처럼 주인들의 이름을 넣어 믿음직하다. 가게 외부 페인트칠과 간판 제작은 활동가들의 도움을 받아 주인들이 직접 했으니 자부심도 대단하다.
봉화에서 직접 농산물을 재배해 판매하는 유라(24)씨는 "대량으로 생산된 물건들이 바쁘게 소비되는 장터가 아니라 사람의 향기가 나는 장터라 좋다"면서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던 주민들도 점차 마음을 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청년들은 '열린 공간'이라는 콘셉트에 맞게 장터 가운데 주민들이 보고 즐길 수 있도록 정원도 만들었다. 오랫동안 철길이었던 터라 중금속 오염이 심해 꽃을 심어 토지를 정화하는 식물재배 정화법을 썼다고 한다.
"같이 하고 싶은 청년이 있다면 대환영"이라는 청년 운영진들은 올해 장사가 잘되면 장기적으로는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공연 등 다양한 사업과 나눔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공덕역 1번 출구 인근에 위치한 늘장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매일 선다.
손효숙기자 sh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