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의 삽화, 만추(晩秋)의 서사(敍事)다. 바이올린의 표준 모형을 창시했으며 명품 바이올린을 제작한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우스(1644?~1737). 이탈리아 크레모나 출신으로 평생 540여 대의 바이올린을 만들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박물관 등에 보존돼 있고, 연주자의 손과 어깨에서는 50여대만 활약하고 있다. '현악기는 400년 동안 진화하고, 400년 동안 퇴화한다'고 하니 '스트라디바리'는 지금부터 절정기인 셈이다.
▲ 그는 동향의 니콜로 아마티(1596~1684)로부터 바이올린 제작을 배웠다. 아마티는 프랑스 루이 13세의 주문으로 '왕의 24'라는 불후의 명기를 만들기도 했다. 왕실과 귀족의 사랑을 받았던 아마티 바이올린은 폭이 다소 넓고 음색이 우렁차 '그랜드 패턴'의 이름을 얻었다. 당시 바이올린이 협주악기에서 솔로악기로 떠오르던 시기였기에 '아마티 그랜드'는 이후 현대 바이올린의 원조로 자리잡았다. 그의 수제자가 스트라디바리우스와 안드레아 과르네리(1623~1698)다.
▲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에 유일하게 필적하는 명기 '과르네리'. 같은 스승 아래서 성숙한 두 장인은 대비되는 음색의 명기를 후세에 남겼고, 20세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1920~2001)은 "스트라디바리는 사랑해야 하지만 과르네리는 강간해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들 명기는 아시아에선 한국 10대, 대만 20대, 일본에 100대 쯤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은 1960년대 이후 국가 시책으로 수집에 나서서 미국과 함께 세계 최대 보유국이 되었다.
▲ 실내악 앙상블 '에라토'가 내달 서울 전주 광주 대구 부산을 순회하며 비발디의 을 연주한다. '스트라디바리' 4대가 한꺼번에 연주되는 일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고 한다. 일본의 한 음식점 사장인 무네 츠쿠씨는 2007년부터 국제콩쿠르를 개최해 우승자에게 2년 간 '스트라디바리'를 무상으로 대여하고 있다. 이번에 방한하는 4대 중 3대가 그가 대여한 것이고, 그의 콩쿠르 우승자도 이번 공연에 나선다고 한다. 부러운 일이다.
정병진 주필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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