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늙고 있다. 조로(早老)속도는 위험수위다. 훗날 노인인구야 지금 살고 있으니 고령화 전망은 틀릴 일조차 별로 없다. 주목해야 할 건 출산 감소다. 노인부양비율의 분자(65세↑)는 대중교통 배차시간처럼 맞아 떨어지며 늘어나는데, 분모인 현역인구(15~64세)는 급감추세다. 가분수처럼 곧 노인대국이 될 것이란 전망은 그래서 거의 확정적이다. 우려스러운 건 기울기다. 베이비부머가 은퇴세대로 접어들며 덩치를 키우는데 뿌리로 이를 받쳐줄 유년인구는 빠르게 감소한다. 기형화된 괴물처럼 인구구조가 변했다는 얘기다.
사회는 지속가능할 때 건강해지는 법이다. 지속가능의 대전제는 탄탄한 인구구성이다. 후속세대가 끊임없이 연결돼 바통을 받아주면 훨씬 수월하게 저성장ㆍ고령화의 국가위기를 피할 수 있다. 재정부담은 줄이면서 세수확대가 가능해진다. 적어도 시간은 벌 수 있다. 그러자면 경제활동인구가 튼실하게 수혈될 필요가 있다. 출산율을 높여 분자를 키우는 게 직접과제다. 여기까진 삼척동자도 아는 상식이다. 현실이 쉽잖다는 한계도 마찬가지다. 지속가능한 경제ㆍ사회건설이 말처럼 그리 간단한 과제가 아닌 셈이다.
해법은 뭘까. 종류는 많다. 사견을 전제로 급한 건 결혼장벽의 제거다. 결혼이라는 일생일대의 개인적인 생애 이벤트가 갖는 사회적 파급효과에 대한 주목이다. '결혼→출산→양육'의 흐름완성이다. 이때 중요한 건 결혼장벽의 통과다. 적으나마 희망적인 시그널 때문이다. 결혼하면 그나마 출산확률이 높아질 수 있어서다. 고령대국인 일본통계를 보자. 일본의 부부완결출생아수(1.96명)는 합계출산율(1.39명)보다 높다(2010년). 합계출산율은 미혼까지 포함해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예상자녀수다. 반면 부부완결출생아수는 부부가 실제 아이를 낳은 숫자다. 다소 앞서가는 추정이지만 부부의 출생아수가 고령문제가 심각했던 2002년(2.23명)조차 꽤 높았다는 일본사례는 어쨌든 결혼이 출산율을 높일 수 있는 힌트임을 보여준다.
다만 청년은 바보가 아니다. 결혼을 '미친 짓'으로 규정하는 심정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충분하다. 결혼을 결심할 땐 비용과 편익이 비교된다. 사랑 등 무형편익까지 넣어 비용보다 남는 장사일 때 결혼을 택한다. 그런데 이게 요즘 깨졌다. 급속도로 불어난 결혼 및 유지비용의 무게 탓이다. 뚜렷해진 '미루다가(晩婚) 포기하는(非婚)' 결혼추세다. 천문학적인 결혼비용과 이후의 주거부담 때문이다. 가뜩이나 고용불안이 높아 더하다. 하물며 출산ㆍ양육비용은 그 자체가 부담천지다. 돈 드는 성징ㆍ본능 대신 차라리 초식남ㆍ건어물녀처럼 중성화되는 게 속 편한 시대다. 사회건강을 위협하는 인구단절이 심각한 이유다.
정부가 나설 때다. 결혼권장을 청년정책의 선순위로 넣으면 어떨까. 물론 그나마 한국의 청년정책은 별로 없다. 정부의 자원배분은 '기득세대 > 청춘세대'로 무게중심이 옮겨간 지 오래다. 있어도 주택청약처럼 기성세대를 위한 정책세트에 가까스로 껴들어간 생색내기이거나 보편주의에 함몰돼 방향을 잘못 잡은 양육지원처럼 헛도는 정책이 적잖다. 즉 쏠림현상을 막는 불균형 시정차원에서라도 청년배려는 필수다. 이때 결혼을 쉽게 하도록 정부자원을 재배치하는 게 좋다. 정부가 중매쟁이까지 될 필요는 없지만 표로 로비하는 실버 민주주의에 휘둘릴 필요도 없다. 재정부족만 탓하지 말고 있는 재원이라도 적재적소에 투입하면 효율성은 곧 개선된다. 사회적으로는 허례허식으로 가득한 결혼문화가 시정대상이다.
인구정책은 장기과제다. 즉각적인 정책효과는 찾기 힘들다. 그래서 정치권은 되도록 피하고 싶다. 목소리는 높여도 진정성은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인구문제는 지체돼선 곤란하다. 훗날 상당한 후폭풍이 갈 길 바쁜 한국사회의 뒷덜미를 잡을 공산이 커서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건강한 가족형성을 위한 첫 관문인 결혼장벽을 허무는 게 시급하다. 현재 한국에 직접적인 결혼정책은 거의 없는 듯하다. 결혼과 출산의 인구경제학이 갖는, 신속한 정면승부의 호소를 더 이상 회피해서는 곤란한 이유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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