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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술인의 시간] <37> 고해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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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술인의 시간] <37> 고해성사

입력
2013.09.16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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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역술인이다. 역술인은 역학자와는 달리 역학을 이론이나 학문적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현실에서 얼마나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

이럴테면, 의학을 학문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학자가 있는가 하면 의사는 그 학자에게서 배운 이론과 지식을 토대로 실생활에서 의술을 행하는 것과 비슷하다 하겠는데 의외로 의사와 역술인은 조금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양(陽)으로써 귀격(貴格)으로 분류되는 의사와 음(陰)으로써 천격(賤格)으로 분류되는 역술인을 비교한다는 그 자체에 불편함을 느끼시는 분들이 있을 수 있겠으나 필자가 실제 상담을 해보니 많은 부분에서 비슷함을 느낄 수 있었다.

가장 큰 특징은 활인공덕(活人功德)의 삶을 살아간다는 점이다. 활인공덕이란 사람을 살린다는 의미인데 몸이 아픈 사람을 치료하거나, 외모에 대한 스트레스가 컸던 사람에게 희망을 주어 새 삶을 살아가게 해주기 때문에 의사는 사람을 살리는 명으로 구분된다.

역술인은 몸이 아닌 마음에 병이 든 사람을 돕기 위한 직업으로써 의술의 그것과는 달리 음(陰)의 영역에서 활동하는데 가끔 실제로 사람을 살리는 경우도 있다. 2012년 가을, 처녀가 임신을 했는데 남자와 남자 집안에서 결혼도 반대하고 아이도 지우라고 하는 바람에 날마다 눈물로 밤을 지세웠으나 필자의 말대로 행한 후 결국 기적적으로 결혼했고 올해 예쁜 딸을 출산한 사례가 있었다.

아마도 필자가 역술인의 삶을 살면서 가장 뿌듯했던 기억이라 할 수 있겠는데 의사들 역시 사람을 살리면서 가슴 벅차오르는 희열을 느낀 경험들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또 다른 비슷한 부분이라 함은, 지독한 고독과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는 점이다. 의사의 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평생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며 남 모르는 고독의 시간이 유난히 많은 편이다. 아마도 평생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기에 그런 것 같은데 역술인 역시 그러하다.

의사가 되기 위해 오랜 세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처럼 역술 역시 많은 시간과 노력이 뒤따라야만 하는 분야이다. 특히, 기문(奇門)학의 경우는 학문적으로 완벽하게 알았다고 생각했으나 세월이 지난뒤 다시 되돌아보면 내가 몰랐던 부분이 갑자기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몹시 당황스러운 경우가 있는데 그 만큼 어려운 학문에 해당된다.

이렇게 비슷한 부분들이 있어서 그런지 현실 고민 역시 비슷한 부분들이 많은 것 같다.

개업한 의사라면 다 마찬가지겠으나 그 중에서도 성형외과 전문의는 환자의 치료 결과에 유달리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치료 결과가 바로 눈에 보이기에 '실력이 좋다, 결과가 좋다'는 평이 나면 좋으나 그렇지 않으면 병원 운영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일 그럴 것인데 역술인 역시 마찬가지이다.

역술인이 신(神)이 아니므로 미래를 100% 다 맞출 수는 없겠으나 그래도 최선을 다해 맞추려고 노력한다. 이 경우 좋은 평을 받으면 역술인으로서의 삶을 무난히 살아가게 되지만 평이 좋지 않을때는 아예 다른 직업을 찾아야만 하는 극단적인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이 때문에 역술인 역시 적지 않은 스트레스가 따르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역술인의 삶을 살다가 스트레스에 이것저것 신경 쓰이니 나중에는 강의만 하는 역학자의 삶으로 전향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거기에 비해 필자의 스승이신 용회수(龍會秀) 선생님은 현재는 고령으로 인해 더 이상 상담을 하지는 않으시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활발히 역술인의 길을 걸어오셨기에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현실 고민에서 "지금은 내 손이 떨리지 않아 괜찮으나 나이가 들어 손 떨리기 시작하면 이 직업을 계속 할 수 없을텐데 그 때가 걱정입니다. 왜냐하면 손 떨리면 의료사고가 생길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라는 의사들의 고민을 많이 듣게 된다.

그만큼 의사의 의료사고 스트레스는 적지 않은데 비교의 대상으로 적절하지는 않겠으나 역술인에게는 상담 후 상담자의 현실이 오히려 참담하게 바뀌어 버리는 것이 의료사고의 그것과 거의 같은 수준이라 하겠다.

오래 전, 사업을 하고 있는 필자의 지인이 자신의 회사와 중국 모 거래처와의 거래가 성사될 것인지 질문해 왔었다. 당시, 필자는 성사될 것이니 적극적으로 임해도 되겠다는 의견을 냈었고 필자의 지인은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그 회사와의 거래에 적극적으로 임했었다.

이 후, 중국 거래처에 필자가 그 지인과 함께 가게 될 기회가 있어 직접 가보았는데 중국 도착 후 매화역수로 괘를 내니 거래 자체가 사기성이 짙고 오히려 곤란만 당하는 상황이 나타날 것으로 나와서 필자는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성사될 것이니 적극적으로 임해도 되겠다는 판단을 했으나 막상 중국에 도착해서 보니 오히려 손재수라... 아니 왜, 내가 이런 실수를 하게 되었지?" 필자는 온 몸이 낮좆都?

아니나다를까, 거래에 임하는 중국측 상인들의 태도가 불성실 하였고 만사가 정상적이지 않았는데 결국 지인의 회사는 중국 거래처와 거래 성사가 되지 못했으며 과정에 많은 손실도 발생했다.

나중에야 왜 필자가 오판을 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지만 그 당시 어떤 형태로건 필자의 책임이 적지 않음을 알았기에 지인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처지가 되었다. 당시 그 사건은 이 후 필자의 상담 방식이나 관념을 모두 바꾸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필자는 그 당시를 떠올리면 지금도 식은 땀이 난다. 그래서인지, 매일 기도 드릴 때 "하늘이시여, 저로 인해 사람들이 고통 받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라는 내용은 반드시 들어가는 것 같다.

날씨가 선선해지기에 예전 생각이 많이 난다. 오늘은 독자 여러분들께 고해성사를 한 기분이다.

역술인 부경(赴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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